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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내비게이션

by 이종준

경북봉화에서 진행된 실경 뮤지컬 ‘이몽룡’ 공연을 보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지금 시간은 저녁 10시. 밤이 늦어 위험하니 봉화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난 부산으로 향했다. 어젯 밤 일과 그것으로부터 시작된 지난 3년간의 기억들 속에서 이것저것 생각해 볼 게 많아서였다. 어제와 똑 같은 상황이 다시 전개되는 것도 싫었다. 아주 작은 서운함이 내가 바라보는 마음 전체를 흔들었다. 몸은 피곤해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고, 심야운전을 선택했다. 어차피 인생은 고go가 아닌가? 스마트 폰 앱을 켜고 출발지 경북 봉화와 도착지 우리 집을 입력하자 3시간 20분이 나왔다. 홀로 생각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그렇게 공포의 심야운전은 시작되었다.

출발하는 곳과 도착하는 곳만 입력하면 가장 적합한 길을 알려주고, 현재의 교통상황, 막히는 곳, 내가 몰고 있는 차의 속도까지 알려주니 내비게이션은 참 신기한 프로그램이다. 저 하늘 높은 곳에 있는 인공위성과 내 위치의 정보를 빛의 속도로 주고받으며 분석해 내고 있으니, 이렇게 가라고 하는 하늘의 뜻과 다를 바가 없다. 세상을 살면서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시작과 끝을 입력하면 가야할 길과 해결책, 조심해야 할 내용과 속도를 바로 알려주는 내비게이션도 있었다면 좋을 뻔 했다. 그런 물건이 있다면 사고나 정체에 의해 내가 가야할 길이 막혀 조금 늦을 수는 있어도, 목표점을 향한 방향은 틀어지지 않았을 텐데... 인생 내비게이션이 없는 게 아쉬웠다.


일단 봉화에서 중앙고속도를 타기 위해서 영주로 가야한다. 밤 10시, 예상대로 시골길은 한적하고 어두웠다. 가로등이 없거나 꺼져있어 밤 세상의 빛은 내 앞길을 밝혀주는 헤드라이트 불빛과 드문드문 마주치는 차의 불빛, 별빛과 달빛이 전부였다. 이 길은 마치 뭘 어떻게 해야 될 지도 모르겠고, 나아가야 할 방향도 헷갈려 하던 사회 초년병시절의 나 같다. 스쳐지나가는 차들처럼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드문드문 나타나 가야 할 길을 알려 주었던 많은 사람들... 남명스님과 집사람, 형님과 누나, 부모님, 친구들이 생각났다. 어두운 도로에서 드문드문 내가 가는 길에 나타나 함께 빛을 비추여 가다가 제 갈 길로 사라지는 자동차 빛처럼 그들도 그들의 길을 가면서도 한 번씩 나를 비추어주었다. 그 자리에 있는 것 만으로도 고맙다.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영주에서 내비게이션 아가씨의 친절한 안내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들어선 바람에 다시 제 길을 찾는데 10분가량을 소비했다. ‘느긋하게 가지 뭐! 조금 늦으면 어때... 제대로 가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 길을 잃자 당황을 했으면서도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했다. 낮에 와본 길이니 당연히 알겠지 하는 자세를 버리고, 하늘에서 알려주는 길의 정보에 좀 더 자세히 귀를 기울이고, 표지판을 더 자세히 보고, 들어설 길 판단을 해야 한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 제대로 찾기까지 꽤 긴 시간이 든다. 길을 재검색하느라 차를 세운 사이에 집사람에게서 온 카카오 톡을 확인했다. 늦었는데 천천히 조심히 오라는 메세지... 집 밖으로 나와 길을 헤매고 있는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집에 있다는 것에 한 번씩 깊은 마음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그 덕에 주변이 든든해진다. 그래 집으로 가자! 집!


드디어 영주IC를 통과했다. 이젠 안심하고 속도만 확인하며 앞 만보고 달리면 된다. 낯설고 좁고, 단속카메라가 많았던 지방도로는 끝났다. 앞으로 쭉쭉 달릴 일만 남았다. 새로 생긴 고속도로라 다니는 차도 많지 않고, 단속카메라도 많지 않아 차들의 속도가 빨랐다. 지난 번 왔을 때 막 달려가는 앞차를 따라가다 단속카메라에 걸려 벌금을 냈다. 벌금보다는 심야의 방어운전차원으로 저속차선에서 100km의 규정 속도를 지키며 운전했다. 밤 11시, 너무 늦은 시간이라 고속도로에도 차가 드물었다. 이젠 반대편이 아니고 내가 가는 방향과 같은, 뒤에서 불빛이 다가오면 반갑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다른 차량이 내 차를 앞 질러가면 그 차 뒷 꽁무니를 한참 따라가며 동행하고 있다는 위안을 받는다. 하지만 곧 규정 속도를 잘 지키는 나와 멀어져 작은 불빛으로 사라진다. 일방의 길 위에서도 난 다시 혼자가 된다.

밤12시, 자정! 23시 59분 59초까지의 어제를 마감하고 00시00분00초의 자정을 지나 00시00분01초의 오늘이 되었다. 3초의 경계로 어제와 오늘이 나뉘었다. 경북 의성과 군위사이를 지나는 것 같은데 갑자기 밤안개가 피어올랐다. 고속도로에서 앞뒤의 차가 안 보이는 가운데 피어나는 새벽안개는 묘한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안개가 차로 막 달려들 듯이 다가올 때는 등이 서늘해지고 머리가 쭈뼛하고 선다. 자시子時에 천문(天門)이 열린다더니... 저 멀리서 소복 입은 여자가 손을 흔들며 다가 올 것 같다. 머릿속을 장악한 어처구니없는 이 상상은 사람을 긴장하게끔 만들고 사소한 것에도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헤드라이트 빛을 최대한 멀리 보이게끔 켜고, 졸음 방지하기 위해 껌을 씹고, 떨어진 당을 보충하기 위해 사탕을 혀 밑에 두고 녹여 먹으며 음악도 틀었다. 박정현의 ‘미아’가 차안에서 울려퍼진다.


'또 다시 그 길을 만났어... 한참을 걸어도 걸어도... 익숙한 거리... 추억투성이...미로 위의 내 산책... <중략>... 길을 잃어버린 나... 가도 가도 끝없는... 날 부르는 목소리...' - 박정현 ‘미아’ -

나는 한 때 ‘미아’의 가사와 리듬에 꽂혀 산 적이 있다. ‘미아’속, 미로는 살면서 항상 포기했던 길들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았고 오래전 스쳐지나간 한 사람, 한 사람이 떠올랐다. CD를 한곡 되감기로 돌려놓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따라 불렀다. 열두명 넘게 오래전 ‘미아’를 불러낸 것 같다. 그 덕에 이 길 위에서 혼자 달려가고 있다는 고독감과 낯선 두려움이 사라졌다. 지금 상황과 상관없이 기억 속에 늘 살아있는 그들이 고마워졌다. ‘언젠가 한번은 찾아보겠지.’ 영천휴게소가 가까이 있다는 푯말이 보였다. 갑자기 휴게소 자판기 커피가 그립고, 누구라도 좋으니 사람이 보고 싶어졌다. 쉴 때도 되었다. 휴게소를 향했다.


새벽 1시, 경주를 지나자 눈에 익숙한 길들이 보였다. 여기부터는 내비게이션의 도움 없이도 갈 수 있다. 나이 사십 줄에 들어선 남자들처럼 과속하지 않고 무리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여기서부터 조심해야 할 것은 이 길의 ‘익숙함’에 대한 자신감이다. 너무 잘 알아서 더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언양을 지나고 양산을 지나 부산이 가까워지면서 차들이 많아졌다. 주위도 환해졌다. 이젠 서둘 일이 없지 않은가? 아니 처음 출발할 때부터 서둘 일은 없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 야밤에, 굳이 이렇게 심야운전을 할 일이 아니지 않았는가? 서운한 마음이야 덮어두고 그냥 아무 일 없듯이 함께 있다가 흐르듯 떠나면 되는 일을 이렇게 표시를 낼 이유도 없었다. 길을 잃든, 돌아가든, 쉬어가든, 기뻤든, 서운했든, 오늘오든, 내일오든 또 다시 이 길에 들어서야 했다.

출발 때부터 함께하고 늘 친절했던 내비 아가씨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경북 봉하에서 부산까지, 그 길의 끝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끈다. 덕분에 밤 늦은 인생 드라이브는 무사히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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