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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테이블 여섯 사람

by 이종준

첫 번째 사람.

나는 지금껏 그가 리더인줄 알았다. 회의를 거듭할 때마다 그는 언제나 합리적이었으며,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체 회의 때마다 다른 의견들이 테이블 위를 넘나들고 간간히 감정 섞인 말들이 오갈 때에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충분히 익은 뒤에서야 그가 결론을 내로고 방향을 제시한다. 거의 대부부분은 참여자의 동의를 이끌어 냈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그 결론의 대부분에 자신의 이야기가 있었다. 항상 자신이 있어야 했다. 모든 대화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안에 있어야 했다. 그게 아쉬웠다. 오랜 사귐이 있었던 그인데, 이 모임에서 내가 생각했던 그는 함께 가는 리더였는데, 정작 그는 전체를 자신만 보라는 보스로 착각하는 듯 하다. 그래서 그는 리더가 될 수 없다.


두 번째 사람.

그는 많은 정보와 자료를 분석을 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만들 수 있으며 그것을 잘 표현해 낸다. 앞서 나서는 전사는 아니며 항상 뒤에서 전략을 짜는 참모형인간이다. 말이 좀 많다는 것 외엔 드러난 흠결을 볼 수 없어 개인적으로 나름의 신뢰와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어떤 일들이 이어지고 처리하는 과정의 시간들을 함께 하다 보니 신뢰보다는 보신에 능한, 조금이라도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용기가 부족한 딸깍발이다. 그는 그의 결정으로 다른 사람이 다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무엇이 옳다는 것은 없다. 사람이니까 뭐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 기대를 하고 그 기대가 무너졌을 때의 감정은, 그 실망감은 참으로 표현해 내기 힘들다. 역설적이게도 괜찮아 보였던 사람이 앞으로 별로 만나고 싶지않는 인간으로, 어떻게 변해가는 지 확인하고 공부가 된 좋은 경험이다.


세 번째 사람.

그는 조언을 하는 사람이다. 말이 없으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의심나는 정보는 되묻고 확인을 한다. 적당히 조율할 수 있는 경륜과 인품, 특히 외형을 지니어 사람들의 신뢰가 높다. 그가 가진 정보의 수준이 높다. 식사 때 마다 드러나는 감사의 자세도 보기에 좋다. 다만, 그는 항상 한발만 담그고 있다. 물론 그 한발은 깊고 정확한 면이 있고 핵심을 짚고 있어 사람들의 믿음이 있다. 문제는 다른 쪽을 향하고 있는 또 다른 발이 보인다는 것이다. 진정 다른 어떤 이를 위해 일을 한다면, 이 분은 더 집중해서 더 깊게 뛰어들어야 한다. 그래야 그를 믿고 어떤 일의 판에 뛰어든 사람이 제대로 평가될 수 있도록 그부터 그 자리에, 현장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쉬운 것이 많은 분이다.


네 번째 사람.

이이는 현실에 사는 사람이다. 철저히 사건의 개요와 벌어질 일, 처리과정, 결과에 대한 예측을 하며 접근하는 사람이다. 친근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인간적 정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 행정적 절차에 맞게 한다. 틀린 점이 없고 일처리가 적확하기는 하다. 그런데 뭔가 아쉬움이 있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삶의 치열함이 가끔씩 밖으로 비치기 때문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계속 부딪히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겉으로는 크게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속으로 철저히 자기계산이 분명히 있는 사람, 사실은 이런 사람의 속이 더 무서운 법이다.


다섯 번째 사람.

뒤늦게 합류를 했지만 눈길을 끄는 사람이다. 좀 늦게 이 모임에 뛰어 들어서 그런지 계속 듣고만 있다. 좀체 자신의 의견을 내지 않는다. 회의의 말미에 한 번도 발언하지 않는 사람의 의견을 요구하면 그제서야 자신이 본 바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지적이 일처리의 핵심을 짚고 있다. 일처리의 방향성과 결과 예측을 정확히 하고 있다. 몇 번이 모임이 지난 뒤에 안 그 사람이 해결해 온 일을 보면 놀라운 점이 많았다. 스스로 살아 온 삶이 타인을 위하며 공익에 부합하는 일을 했음에도 자신의 공은 드러내지 않고 필요한 사람에게 그 공을 돌리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다. 어떤 일로 자신에게 불리한 선택을 한 사람일지라도 증거가 확인되지 않는 한, 자신이 믿은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있고 그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사람이다. 그 스스로 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오랜만에 만나는 리더형 인간이다.

여섯 번째 나.

좋은 평판을 듣는 편이다. 판단도 합리적이고, 정보의 질이 높아 정확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괜찮은 참모형 인간이다. 어떤 일이 주어지면 직접 뛰어들어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편이어서 신뢰도가 높다고 생각을 한다. 다만, 그런 참모적 능력을 보고 많은 사람들의 요청이 있고, 나는 그 요청을 다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꾸준함을 잃어버리게 하는 병이다. 지난 세월 몇 번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기에 마다 반복되는 꾸준함의 상실이 결국 미래의 진로를 방해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어렵게 한다. 말도 많다. 맞는 말인데 타인을 아프게 하는 표현을 한다. 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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