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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푸트 핫도그

by 이종준

퇴근길 버스정류장 가는 길, 오렌지색 비닐 지붕 포장마차가 있다. 포장마차 틈 사이로 맛있는 냄새가 솔솔 새어 나온다. 코와 침샘을 자극하는 것은 핫도그다. 풍부한 기름기, 넘치는 열량을 자랑하는 핫도그의 맛있는 유혹에 넘어갔다.

“핫도그 하나 주세요.”

시각과 후각, 청각, 촉감과 기대감까지, 오감이 즐거운 그놈을 크게 한입 베어 문다. 겉은 바싹하고 속은 부드럽다. 말랑한 소시지의 고소한 맛이 입 안 가득 쳐들어온다. 맛있다. 핫도그 맛에 빠져 있는데 똑같이 생긴 초등학생 두 명이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크고, 작은 동글이. 척 봐도 형제다. 형제도 같이 핫도그를 선택한다. 같은 맛을 즐기는, 고소한 동지적 감성이 속에서 폴폴 올라왔다.


“일곱 신데 집에 안 가?”

“아직 학원 안 끝났어요.”

“언제 끝나는데?”

“여덟 시쯤... 영어 남았어요.”

나보다 귀가 시간이 늦다. 연년생 형제는 학교 마치고, 방과 후 수업을 듣고, 학원에서 집에 가면 빨라야 8시 반이라고 한다.

“학원에 와야 놀 친구들이 있다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도 거의 다 학원에 와 있다고 한다.

“예, 놀려면 학원에 와야 돼요!”

“공부하러 오는 게 아니고?”

내 질문에 큰 동글이가 꼬롬한 눈으로 쳐다본다. 작은 동글이는 엄마보다 자기가 더 바쁘다며 한숨을 다 쉰다. 엄마는 회사만 가면 되지만, 자기는 학교도 가야 되고, 태권도도 해야 되고, 영어, 수학학원도 가야 된다고 했다. 토요일에는 논술학원, 일요일도 미술학원에 가는 ‘학원 돌이’란다. 초등학생이 일주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공부하는 것이다.

“안 힘들어?”

“힘들어 죽겠어요.”

오만상을 찡그리며 내뱉는다. 아이들은 학원 다니느라 정신없고, 부모들은 애들 학원 보낼 돈을 버느라 정신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모두 정신없이 사는 세상이다. 예쁜 입은 핫도그를 물고, 작은 손은 스마트폰 위에서 춤추고 있다. 눈은 스마트폰을 쳐다보면서 설탕 묻은 입만 조물조물거린다.

“형, 뭐하는데?”

“앵그리 버드. 너는?”

“난 다크 월드.”

‘화난 새? 어두운 세상?’ 자기만의 스마트한 세계에서 형제가 각각 다른 게임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핫도그를 다시 한입 가득 베어 문다.


아이들이 ‘다망구’를 하고 있다. 전봇대를 중심으로 두 명의 술래가 여러 명을 잡는 놀이다. 술래 한 명은 친구를 잡으러 다니고, 한 명은 전봇대에 잡혀 온 친구들을 지켰다. 술래 손이 다른 친구의 몸 어디든지 건드리면 잡힌 것이다. 술래에게 잡힌 애들은 전봇대에 붙어있어야 된다.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 손으로 만든 줄을 최대한 길게 늘여놓는다. 아직 안 잡힌 친구가 달려와 줄을 끊거나 건드리며 ‘다망구’를 외치면 모두 다시 살아나 도망을 간다. ‘다망구’는 ‘ 도망가라고’의 준말이 아닐까? 술래를 피하는 민첩성과 순발력이 요구되는 놀이다. 전봇대까지 들키지 않고 다가가는 전략과 의리도 필요하다. 잡힌 친구들도 협동심이 있어야 다시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모두 술래에게 잡히면 다시 술래를 뽑는다.

방금 어느 천사 같은 손이 긴 줄을 건드리고 사라졌다. ‘와’하는 소리와 함께 길게 한 줄로 늘어섰던 꽃들이 다시 살아나 웃으며 봄바람처럼 골목으로 퍼져간다. 큰길에서 골목으로 들어서면 아이들은 구슬치기를 하고 있다. 땅바닥 삼각형 안에 유리구슬들이 잔뜩 들어있다. 건너편 줄 너머에서 왕 구슬로 삼각형 안에 있는 구슬을 정조준을 하는 친구가 있다. 집중해서 한 곳을 노려보는 눈은 구슬보다 더 크고 예쁘다. 딱딱하고 편편한 시멘트 바닥에서 딱지치기하는 친구들이 있다. 한 친구는 금방 새로 산 스케치북 표지를 뜯고 있다.

그땐 아이들이 골목의 주인이었다. 주산이나 피아노, 태권도를 배우는 아이들도 가끔 있었지만 골목에 가면 같이 뛰어 놀 친구들이 언제나 있었다.


삼 형제는 엄마와 3:1, 안방 레슬링 타이틀매치를 하고 있다. 붉은 장미가 그려진 3단 접이식 스펀지 이불을 깔아 놓고 뒤엉켰다. 형은 언제나 박치기 왕 ‘김일’이고, 나는 꿀밤 대왕 ‘여건부’였다. 막내는 ‘천규덕’, 엄마는 ‘김일’의 강력한 적수 ‘안토니오 이노끼’였거나 ‘자이언트 바바’였다. 삼 형제가 엄마의 배와 다리를 꽉 잡아 누르고 ‘원, 투, 쓰리’까지 외치면 승부가 나지만, 엄마는 언제나 ‘투’에서 시부지기 일어났다. 레슬링은 이 다리가 내 다리인지, 형 다리인지 모를 정도로 신나는 놀이였다. 내가 실수(?)로 만만한 막내에게 강력한 여건부식 꿀밤 공격을 하고 막내가 울면서 레슬링이 끝났다. 그날 처음 핫도그를 먹었다.


작은 부엌에 큰 엄마가 있다.

공기 조절 구멍을 활짝 연 연탄아궁이 위에 양철주전자가 놓여 있다. 육각형 소시지와 밀가루 반죽도 준비되어 있다. 엄마가 핫도그를 만들고 있다. 삼 형제는 방 안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다.

“치이이... 치이이...”

고소한 냄새가 온 집에 가득 찼다. 그렇게 레슬링을 한 뒤에 만들어 먹었던 첫 핫도그의 맛! 그 맛은 입맛의 경계를 넘어온 몸으로 기억되는 본능 같은 맛이 되었다. 추억 속에서 평생 잊혀지지 않는 핫도그의 행복한 첫 맛, 소울푸드로 각인되어 있다. 지금 이 핫도그도 맛있지만, 그때 첫 핫도그 맛에 비하면 백만분의 일도 안 된다. 택도 없다.


“안녕히 계세요.”

“벌써 다 먹었어?”

“네.”

“그럼 학원에서 잘 놀다 조심해서 집에 들어가.”

동글이 형제를 보며 웃었다.

“네.”

이번엔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동글이들도 날 보고 웃는다. 핫도그 부스러기 묻은 저 예쁜 입가에 게임같은 다크 월드는 없다. 작은 동글이 입을 닦아 주자 쏜살같이 학원을 향해 뛴다.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천 원을 건네며 괜스레 고마운 마음이 들어 제대로 인사를 챙겼다.

“할머니! 진짜 잘 묵고 갑니다. 많이 파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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