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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이 그립다

by 이종준

지난 며칠 우리 집엔 씻는 물이 귀했다. 어디가 잘못됐는지 수돗물 양이 턱없이 줄면서 수압도 약해져 물이 보일러를 돌아 나오는데 30분 이상 걸렸다. 그 양으로는 샤워는 물론, 머리 감는 일조차 엄두도 못 낼 일이 되었다. 찬물도, 따뜻한 물도 졸졸 새는 수준으로 아예 수도꼭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궁여지책으로 주방 가스불과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사용했다. 찬물을 미리 받고, 뜨거운 물은 부엌에서 욕실로 조심조심 가져오고, 온도차가 있는 두 물을 잘 섞어 적당한 온수를 만들었다. 머리 한번 감는데 정말 일이 많았다. 새삼 따뜻한 물 한 바가지의 고마움을 진하게 느끼며 살았다. 마치 1980년대 초 생활을 다시 하는 것 같았다.


그땐, 겨울이면 가족 중 제일 먼저 일어나는 사람은 탄불부터 갈았다. 언제나 엄마였고 가끔씩 나였다. X자로 생긴 연탄집게를 벌려 한 발을 아궁이 뚜껑 고리에 건다. 뚜껑을 옆에 세워두고, 샴쌍둥이처럼 딱 달라붙어있는 백발 연탄을 꺼낸다. 추운 겨울밤을 뜨겁게 태우고 하얗게 식어가는 두 연탄! 아직 벌겋게 달아올라 붙어있는 몸통 중간을 이가 빠진 낡은 칼로 톡톡 때리며 돌리면 둘은 떨어졌다. 화력이 아직 많이 살아있는 위쪽 연탄을 다시 아궁이에 넣고 그 위에 새 연탄을 올린다. 탄불이 잘 살려면 19 공탄, 19개 연탄구멍을 잘 맞추고 숨구멍 조절도 잘해야 한다.


밤새 방을 데우느라 부글부글 끓고 있는 녹색 플라스틱 보일러 통은 찬물을 부어 진정시켰다. 연탄아궁이 위에 있던 물은 다섯 가족이 씻기엔 늘 부족했다. 그래서 곰국을 끊이는 커다란 양은냄비가 항상 부엌에 있었다. 거기에 물을 가득 부어 곤로 위에 올린다. 왜 오리가 불타는 성냥을 물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향로’ 성냥갑에서 성냥을 꺼낸다. 불이 잘 켜지는 각도 45도! 각도와 스피드가 중요하다. “칙” 소리와 함께 구수한 화약 냄새가 부엌에 퍼지면 공중에 있던 불이 성냥으로 옮겨 온다. 곤로 심지를 두어 번 좌우로 흔들고 심지를 최대한 올려 불을 붙인다.


그렇게 데워진 물로 가족들은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추운 겨울 아침이면 가족들은 일어나는 순서대로 종종거리며 부엌으로 뛰어갔고, 그 뜨끈뜨끈한 세수 물에 손을 담그며 “으~ 으~” 거렸다. 손끝부터 전해지는 뜨겁게 짜릿한 행복을 즐겼다. 세수하고 남은 따뜻한 물에 어제 신었던 양말이나 수건을 빨아 널었고, 온기가 남아있는 물은 화장실 바닥에 뿌렸다. 식은 아래 연탄은 집게로 들고나가 대문 앞 살얼음판 위에 던지고 발로 밟아 한 줌 재로 만들었다.


서너 달에 한 번씩, 아침 일찍 아랫집 미현이 엄마가 올라왔다. 두 살 아기를 포대기로 싸서 업은 아줌마는 아직 새댁이다. 착화탄으로 피운 불이 제대로 올라오려면 시간이 걸려 센 불을 빌리러 온 것이다. 미현이 엄마가 탄불을 빌려 남편 출근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미현이와 놀았다. 인형 같은 미현이와 노느라고 삼 형제의 등교 시간은 안드로메다에 날라 가 있었다. 결국 엄마의 한소리를 듣고 나서야 아쉬운 듯 일어선다. 우리가 일어서면 미소천사 미현이는 이별을 눈치채고 울기 시작한다. 얼마 전에 엄마란 말을 막 뗀, 그 조그맣고 예쁜 입이 엄마를 찾는다. 엄마라고 정확하게 발음되기보단 “엉앙, 엉앙” 소리에 가까운 울음이지만, 어느새 미현이 엄마는 미현이 앞에 서 있다.

오~ 놀라워라! 미현이가 운지 10초도 안됐는데 미현이 엄마가 나타나다니! 아주 작은 소리였는데 아래층에서 어떻게 들었지? 마치 ‘원더우먼’ 같다고 우린 수군수군거렸다. 난 그때 엄마들은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원더우먼’이거나 ‘600만 불의 사나이’ 거나 소머즈’인 줄 알았다. 그때 지구의 아침은 늘 바쁘고 시끌벅적했고 아랫집 윗집 ‘원더우먼’과 ‘소머즈’들은 늘 바빴다.


수도 계량기 앞 펌프에 이상이 있었다. 펌프를 새것으로 교체하니 수압은 원상태로 돌아왔다. 온수 꼭지를 틀고 잠시 기다리면 따뜻한 물이 콸콸 쏟아진다. 다시 편해졌다. 언제나 그렇듯이 근심이 해결되면 추억은 퍼뜩 제자리로 돌아간다. 따뜻한 물이 없어 불편했던 잠깐 동안, 옛 추억에서 2013년 초겨울로 가져오고 싶은 게 생겼다.


며칠 전 아침이었다. 아침햇살이 가득 찬 복도에 아기가 있고, 아기를 그윽이 바라보는 젊은 여인이 있다. 좁은 공간 가득히 공명共鳴으로 울리는 울음소리만 없다면, 여인이 아이의 엄마라면 이보다 더 예쁜 정경은 없을 것이다. 노랑 색깔 이름표엔 이름 임지은, 17개월, 병아리반이 적혀있다.

지은이가 울고 있다. 울면서 숨까지 꼴깍거려 작은 가슴이 목에 붙었다. 맑은 이슬이 두 뺨에 흐르고 있다. 지은이는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엄마를 찾고 있다. 공연이 시작되면 큰 문은 닫히고 불도 잠시 꺼진다. 아이들이 동시에 “꺅” 소리를 지르면 우는 아이를 안고 나오는 선생님들이 꼭 있다. 젊은 선생님이 지은이를 업고 한참 복도를 왔다 갔다 하더니 지친 듯 무릎을 꿇고 어르고 있다. 선생님이 최선을 다하지만 눈물을 멈추게 할 방도는 없어 보인다. 낯선 사람이 다가가면 울음을 그칠까 싶어 슬그머니 다가갔다. 나를 바라보는 아기천사의 눈에 눈물이 한 바가지다.

지은이는 처음 보는 나에게 눈빛 말을 걸고 있다. ‘우리 엄마를 데려와 주세요!’ ‘저 좀 엄마에게 데려다주세요!’ 애절한 눈빛이 내 마음을 막 두드린다. 하루 반나절을 함께하는 어린이집 선생님도 안 되는데, 그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머쓱해진 나는 지은이 눈을 피해 창가로 도망갔다. 하필 그때 갑자기 ‘원더우먼’과 ‘소머즈’의 어머니들이 생각난 이유가 뭘까?

창밖 겨울은 더 추워 보였고, 기억 속 ‘원더우먼’들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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