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출근을 하다가 유리문에 부딪혔다. 전혀 예상 못한 상태와 자기방어 조심스러움도 없이 정면으로 통유리문에 앞 이마를 부딪히고 고개가 뒤로 꺾어지면서 뒤로 물러나 주저앉았다. 한동안 못 일어나서 출근하던 동료들이 부축해서 겨우 몸을 일으킬 정도였다. 코피가 날 것 같은 멍해짐과 뒷골도 같이 아파왔다. 이마엔 혹이 나고 안경은 반이 꺾어져 제 모습을 잃은 채로 내 몸에서 떨어졌다. 안경알은 바닥에 부딪히면서 산산이 깨져 사방으로 튀었다.
신문을 쳐다보면서 안전하게 그 곳을 지나쳤던 많은 날의 습관과 방심이 아침부터 이런 곤란함을 주었다. 문제는 깨진 안경이었다. 평상시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몸에 붙은 물건이었지만 난 안경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시력이 좋지 않다. 재빨리 집에 전화해서 여분의 안경을 갖다 줄 것을 요청했지만 안경이 도착할 때 까진 볼펜, 책, 결재판 등등 거의 모든 것들의 거리감 조절에 실패하고 눈앞이 흐릿해져 글자를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누군지 사람을 제대로 판단내리지도 못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눈 앞이 흐려지자 새삼 몸에 붙어있던 안경의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비록 내 몸과는 다른 물질적 성분을 가지고 제작되었지만 안경을 착용하는 순간 내 모든 신경세포와 함께 뇌가 인지하는 모든 정보를 공유하게 된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의 정보를 제일 먼저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눈으로 먼지가 들어오는 것도 안경이 막아 준다. 약간의 색깔이 들어가 있어 한여름 햇빛의 날카로움을 살짝 부드럽게 바꿔 놓기도 한다. 지난 삼십 여 년 동안에 스무 번 정도 몸을 바꾸었지만 이름은 그대로 ‘내 안경’이다. 그때 내 몸에서 떨어진 안경은 착용한지 3년이 넘은 것이다.
안경은 중학교 2학년 때 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동고동락한 물건인데 워낙 존재감이 없다보니 평상시에는 전혀 못 느끼다가 안보이거나 사고로 깨져 없어지면 아무런 생활을 하지 못하는 불편함이 나타난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손을 뻗어 착용을 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사물과의 첫 만남을 하는 소중한 존재인데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대했던 것 같다. 부모님, 집사람, 형님, 동생 처럼
안경이 있고 없고의 존재 유무도 중요하지만 제 눈에 맞는 안경을 착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만약 시력에 맞지 않는 안경이나 초점이 안 맞는 안경을 낄 경우 어지럽고 세상이 빙빙 돈다. 그렇게 안경은 세상 모든 것에 초점이 맞아야만 확실히 통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기도 한다. 안경은 차가운 곳에 있다 갑자기 사람 많은 곳에 들어가면 많은 사람의 열기나 온도차 때문에 보는 것이 흐려지기도 한다. 몸이 피로하든지 아프면 난 제일 먼저 두 눈이 빠지는 것 같은 아픔과 어지러움을 느낀다. 그때는 초점이 흐려진 안경이 천근, 만근이 된 것처럼 무겁고 괴롭다.
안경 때문에 축구, 농구, 야구등 운동을 하거나 군대에 있을 때, 전공을 선택할 때, 각종 시험과 평가 등에서 왠지 불리하게 작용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결국은 부실한 내 눈이 원인이었지만 긴 세월 나도 모르게 안경에게 핑계를 돌리고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로만 느끼고 있었다. 사실 안경은 부족한 내 몸을 대신하여 자신의 역할로 나의 불편함을 숨겨주던 존재였는데 나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그날 아침에 본 뉴스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였다. 바로 재작년까지 대통령이었던 전임 대통령의 자살!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잘못되거나 힘들어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갑자기 내 눈에 보이지 않고 변하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느껴졌다. 마치 깨진 안경을 들고 교정이 안된 눈으로 서 있는 것처럼 방향감을 잃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내가 모르는 사이에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안경처럼 너무도 당연해서 무관심 했던 것, 그 무엇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문민정부에서 참여정부까지 나름대로의 민주화는 이루어져 견고하다고 믿고 있었고 새로 탄생한 정부가 아무리 보수적 성향을 가진 정부라 해도 전체적인 민주주의의 흐름은 더 발전적으로 이어 나아갈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대충 큰 제목만 둘러봐도 영어몰입교육으로 시작해서, 숭례문 화재사건, 강부자 내각, 작년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관련 촛불집회, 서브프라임 사건이후의 경제상황, KBS, YTN등 언론을 장악해 가는 과정, 미네르바 사건, 남북관계의 경색, 4대강 사업의 추진과정, 용산참사,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쌍용차 노사분규 해결과정, 노무현 대통령 서거, 김대중 대통령 서거, 세종시 문제, 복지예산의 삭감 등을 보면 참으로 많은 것이 안 좋게 변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한 것 때문인지 모든 것을 10년전, 아니 20년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려 놓으려 하는 것 같다. 눈에 띄게 언론장악, 당연히 헌법으로 보장된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는 분위기, 다시 등장한 공안,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기업에게는 많은 혜택을 주면서도 복지예산은 삭감하는 정책, 더구나 마스크 착용금지법, 미디어 법, 야간 집회 금지법 등등의 법안의 제출을 보면서 실질적 ‘민주주의의 후퇴’를 보고 있다. 흐려지고 탁해지고 초점이 안 맞고 깨지고 있다.
공기처럼 있을 때는 눈앞에 있고 당연해서 존재감을 느낄 수 없다가 사라지면 그 불편함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상식이 있다. 민주주의라는 그 상식이 통하지 않고 막혀있을 때 마치 안경이 깨진 채 맨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뭔가가 막연해 지고 눈앞이 뿌옇게 흐려져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상태로 되는 것 같다. 또 시력에 맞지 않게 만들어진 안경을 낀 것처럼 주위가 어지럽게 빙빙 돌아가는 것 같다.
안경이 깨지면 당일이나 다음날 바로 새 안경을 맞추어 낀다. 초점이 맞지 않아 어지러우면 바로 안경점에 달려가 초점을 맞춘다. 조금만 지저분해 지거나 뿌옇거나 흐리면 몇 번이고 안경을 닦는다. 왜냐하면 모두 다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세상을 맑게 보기 위해서다. 지켜지는 약속된 상식은 공기 같은, 안경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뒤로 가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