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톱이 깨졌다.
현관에서 안전화를 벗으니 양말에 피가 묻어 있었다. 이런 제기랄! 그대로 주저앉아 발바닥을 들고 자세히 보니 엄지발톱이 살짝 깨졌다. 깨진 부분을 손으로 건드리니 ‘덜렁’ 거렸다. 깨진 줄 몰랐을 땐 안 아프더니, 깨진 걸 보고나니까 더 아프고, 더 쓰리다. 이 정도면 꽤 아팠을 텐데, 어디서 다쳤지?
아, 그때! 실외기 하차下車작업... 작업이 끝나 갈 때! 실외기를 윤씨와 좌우로 밀면서 가는 데 작은 턱에 실외기가 항상 걸렸었다. 내 쪽으로 힘을 더 줘서 턱에 받치고 재끼면 문제없이 넘어갔었다. 조금 전처럼 턱에 실외기를 받치고 힘껏 밀었는데, 아이쿠! 이번엔 방향이 틀렸다. 내 쪽이 아니라 반대 방향이었다. 실외기가 턱에 ‘탁’ 걸리면서 심하게 기우뚱했다. 그때 중심을 잡으려고 실외기에 발을 대다 턱에 세게 부딪히고, 안전화 위로 실외기가 살짝 찍혔었다. 천만다행으로 재빨리 발을 뺐고, 안전화 덕분에 발톱 끝만 깨진 것 같다. 안전화가 없었다면 뼈가 다쳤을 것이다. 발만 먼저 씻고 피가 멎는다는 흰 가루약을 뿌렸다. 붕대를 대고 그 위에 반창고 서너 개를 둘둘 말았다. ‘다시 제대로 붙을까?’
에어컨 실외기 300개가 A동 현장에 들어왔다. 한 개당 백 킬로그램이 넘는 덩치가 크고 무거운 놈들이어서 A동, B동, C동 작업자 모두 달려들어 하차작업을 했다. 철민이도 투입됐다. 그는 내가 집에 가지 않고 숙소에 머물 때 함께 자는 방 ‘짝지’로 28살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그는 경력 10년차 공조부분 베테랑 기술자다. 혼자 1톤 봉고 위에서 실외기를 능숙하게 좌우로 움직여 자리를 잡아 내려주면, 윤씨와 내가 밑에서 받아 밀고 당기며 보관 장소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전문가 덕분에 우리 조가 다른 조보다 몇 배 빠른 속도로 작업을 했다. 둘이 ‘끙끙’거리며 옮기고 돌아오면 혼자 또 하나를 내려놓고 실실 웃고 있었다. 건설현장 10년차는 어떤 일이든 힘으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술이나 요령으로 항상 일을 ‘슬렁슬렁’ 한다. 그래도 빠르고 정확하다. 작업의 달인에게 비법을 한 수 전해 달라고 했다.
“행님은 비법은 무슨... 그딴 거 없어요.”
“자슥이, 공짜아이다. 일마치고 맥주 쏠게! 오케이?"
맥주소리에 눈빛이 달라지고 입 꼬리도 올라간다.
“맥주만? 에이~”
“맥주에 소주, 주酒자 돌림으로... 막걸리 빼고, 양주 빼고 쏠게.”
“나중에 딴말하기 없어요.”
“하~새끼, 말 많네.”
저번엔 내가 얻어먹었다. 어차피 한번은 내가 쏴야한다. 한 턱 쏘는 척하고 배우면 된다.
“행님! 그동안 일을 해보니까요 무슨 일이든 일은 제자리가 있는 기라요. 벽을 뚫을 때도 막대고 돌리면 헛발질이 많아요. 설계도면 보고 그 근처에서 여기저기 탁탁 한번 치보이소. 소리가 다른 자리가 꼭 있어요. 그기 제자리인기라. 고런 자리를 착, 감感을 잡는 게 요령이라. 이렇게 하차작업 하는 것도 무게 중심만 잘 잡고 퍼뜩퍼뜩 움직이면 별로 힘 안 들어가요. 원래 행님같은 초짜들은 서 있는데 그냥 무조건 힘으로 할라하니 안 되는 기라요. 다치든가. 내가 보기엔 뭐든 다 고런, 지자리가 있어요.”
자기는 그런 감이 ‘착’ 잡힌다고 했다. 실외기 가지고 실습처럼 이렇게 저렇게 보여준다. 무거운 실외기가 슬쩍 슬쩍 움직인다. 나도 배운 대로 순간적으로 실외기에 힘을 준다. 하지만 힘만 들어갈 뿐 실외기는 꼼짝달싹 안한다. 고수가 말하는 그 감을 전혀 알 수 없었다. 내겐 그 사과인지 감인지가 강호江湖 절대 고수의 무기처럼 느껴졌다. 끙끙대며 힘을 쓰는 우릴 보고 방 짝지가 또 실실 웃는다. 멋쩍게 나도 웃는다.
“행님! 쪼개지 마세요오~ 정 든다 아이요!”
“자슥이, 빠져가지고, 행님은 세빠지게 일하는데 앉아 실실 웃고 있지...아니, 쪼개고 있지!”
“그래도 맥주사세용~”
그렇게 쪼개며 시작한 일은 늦게 끝났다. 정신없이 일해서 피곤한데다 내일이 일요일이라 술은 다음으로 미루고 하고 집으로 왔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발톱이 쪼개진 것이다. 이제 남아있는 유일한 재산이 몸이란 말을 요즘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있다. 나도 어떻게든 몸으로 하루를 잘 버텨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편의점이나 할 걸... 그랬으면 이렇게 다치진 않았을 텐데. 헷갈리고 혼란스럽다. 발톱도 더 쓰리고 아프다.
‘지금 여기가 내자리가 맞나? 순간적으로 속에서 뭔가 울컥 올라와 집사람이 뭐라 하는데도 안 들렸다. 대꾸도 안하고 대충 씻고, 대충 먹고, 일찍 잤다.’
- 낙원樂園 같은 오아시스를 찾아 뜨겁고 메마른 모래사막을 건너던 낙타무리가 있었다. 앞서가는 낙타의 엉덩이만 열심히 쳐다보며 따라 걷던 한 낙타가 발을 헛디뎌 돌부리를 찾다. 발톱이 깨졌다. 낙타는 평생 사막을 열심히 걷고 있었지만 사막을 벗어나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사실 낙원 같은 오아시스란 것은 신기루다. 다만 낙타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다. 이 사막의 오아시스는 그저 마른 목을 적시는 정도의 물이 나오는 작은 우물이 있을 뿐이다. 낙타들은 낙원을 꿈꾸며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저 사막을 걷고 또 걷고 있다. 발톱이 깨져 무리에서 떨어진 낙타도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사막을 혼자 헤매고 있다. 낙원? 오아시스? 사막? 낙타? 꿈이구나!-
능지처참을 당하는 자세로 사지四肢를 벌리고 누워 밤새 느슨해진 근육에 힘을 준다.
“아~그그그그...”
어, 목뒤가 뻐근하다. 근육이 뭉치려고 한다. 목을 천천히 좌우로 돌려 놀란 근육을 달래준다. 사막 같은 하루가 또 시작되었구나. 하루 동안 사정없이 눌러 댈 중력의 악력握力이 뼈 마디마디에 착 달라붙어 누른다. 요즘 몸이 받아내는 하루의 무게는 천근만근이다. 중력에 맞서 힘을 모아 허리를 곧추 세운다. 단정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팔을 뻗어 천천히 하늘을 밀어 올린다. 크게 호흡을 가다듬고 주위를 살핀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 상처가 제일 먼저 신호를 보낸다. 발톱은 작아도 발가락에 힘을 줄 때 제대로 힘이 들어갈 수 있도록 받쳐주는 구실을 한다. 그게 부실하고 쓰리니 걸음걸이도 절뚝거리는 것 같았다. 조그마한 발톱하나 때문에 온 몸이 쓰리고 아픈 것 같다. 씻기도 조심스러웠다. 빨리 낫거나 붙었으면 하는 생각에 반창고로 동여맸는데 다시 보니 깨진 발톱은 떼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냥 나둬도 빠질 것 같고, 보기도 싫었다. 한 몸일 때의 기능은 사라지고 시퍼렇게 멍들어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입을 꽉 깨물고 손을 떨면서 덜렁거리던 발톱을 재꼈다. 마치 종이에 손을 베는 느낌! 손, 발톱 깍을 때, 손톱깎이가 많이 들어가 파먹었을 때의 아픔이 신경계를 통해 온 몸으로 전해졌다. 소독을 하고 흰 가루약을 발톱이 떼진 자리에 퍼부었다. 새 붕대를 대고 반창고로 칭칭 감았다. 걸음걸이는 아직 이상해도 속은 시원했다. 잘 뗐다.
바지를 입는데 주머니에 뭔가 손에 잡힌다. 옛 직책이 찍힌 1년 전 명함이다. 이 종이에 찍힌 글들은 이름 빼고 모두 거짓말이 되었다. 전화번호도, 주소도, 직함도 함부로 믿어선 안 될 정보들이며 지나간 흔적이다. 이 작은 종이쪼가리가 무엇이었지? 이제 명함은 깨진 발톱이 되었으며, 색이 낡고 구겨져 버려야 할 휴지일 뿐이다. 깨진 발톱처럼 명함을 찢어 버렸다.
새벽일을 나가면서 외피外皮가 더 두꺼워졌다. 추위와 바람, 먼지와 사람들의 눈치에 더 잘 적응되도록 외피들이 어둡고 무겁게 진화했다. 가방도 더 커지고 색깔이 짙어졌다. 가방 속에 든 내용물도 변했다. 노트북이나 계약서, 일일보고서 등 머리 쓰는 일에서, 양말과 수건, 속옷 등 몸에 걸치는 것에 훨씬 가까워 졌다. 그 가방 속, 밑바닥에 무슨 일이든 실속이상으로 꾸미고 드러내던 ‘치레’를 즐기던 마음이 아직 남아 있다. 명함처럼, 발톱처럼 손에 잡히면 떼어내 버리고 싶다. 앞서가는 엉덩이만 쳐다보며 무조건 따라 올라가고자 했던 마음만은 며느리발톱 깍듯이 ‘탁’ 잘라 내고 싶다. 아, 발톱! 또 욱신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