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다 똥 된다.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면

by 진희도

나는 2남 3녀 중 네 번째다.
내 바로 위는 오빠, 아래로는 남동생이다.

집안은 늘 경쟁적이었다. 특히 먹는 것 앞에서는 더 그랬다.

그런데 나는 이 바닥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

좋은 것은 아껴 두었다가 나중에 먹겠다는,

지금 생각하면 꽤 어리석은 짓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 결국 빨리 먹어 치우는 언니와 오빠에게,

물리적으로든 회유로든, 결국 빼앗기고 말았다.


그때 깨달았다.
아끼는 것은 내가 아니라, 다른 것들이 먹게 되는구나.

그 이후로는 제일 맛있어 보이는 것,
아꼈다 나중에 먹고 싶었던 것을 먼저 먹어버렸다.
그랬더니 나머지를 빼앗겨도 덜 억울했고, 덜 속상했다.


어린 시절 그렇게 겪고도 나는 여전히 좋은 것을 아끼고 싶어 한다.
나중에 먹으려고, 나중에 쓰려고 남겨 둔다.

하긴, 이젠 경쟁자가 없으니 안심돼서일까.


나는 과일을 좋아한다.
집 앞에 청송 사과를 파시는 사장님이 계셨는데, 트럭 가게였고 단골이었다.

하루는 사장님이 이렇게 말했다.
“좋고 싱싱한 것부터 먼저 드세요.
썩은 것이 아깝다고 먼저 먹으면, 계속 썩은 것만 먹게 되니까요.”

10년 전, 지혜로운 청송 사과 아저씨의 말은 진리였다.
아까워 썩은 과일을 먼저 먹어왔던 나는,
그날 이후로 싱싱한 과일을 부터 먹는다.


먹을 것뿐만이랴.

아껴 둔 수첩은 너무 예뻐서 글자 한 자 적지 못하고 책장에 모셔 두었다가
나중에 꺼내 보니 종이는 누렇게 변해 있었고,
그 수첩에 적고 싶었던 반짝이는 생각들은 이미 다 날아가 버린 뒤였다.


옷장 속 옷도 그랬다.
‘언젠가 입을 거야.’
살 빠지면 입으려고 남겨 둔 원피스는 끝내 내 몸에 맞는 날이 오지 않았고,
너무 비싸서 아껴 입으려고 걸어만 두었던 코트는
유행이 지난 채 아직도 옷장에 걸려 있다.


안 입고,
안 먹고,
안 쓰니까
결국 똥이 됐다.


어떤 유품 정리사의 말이 떠오른다.
유품을 정리하면서 가장 안타깝게 느끼는 순간은,
물건 주인이 살아생전 아끼고 아끼다 한 번도 써보지 못한 물건을 마주할 때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 번뿐인 인생에서
나는 왜 이렇게 아끼는 걸까.

아마도 언제, 어느 때,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결핍의 DNA 때문일 것이다.

다람쥐가 다 먹지도 못할 것을 알면서도
입안 가득 넣고,
땅에 묻어 두는 것처럼.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아껴 두었던 것은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쓸 것도 아니었다.


내가 아껴 두었던 건
‘지금의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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