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을 건네다

김연수,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읽고

by 윤융


『너무나 많은 여름이』는 낭송을 위한 20개의 길고 짧은 이야기들이 묶인 단편집이다. 몇몇 단편의 주인공들은 가상의 인물같기도 책의 저자같기도 한데, 저자가 독자의 이러한 혼돈을 의도한 듯 보인다. 익명의 화자를 통한 서술은 우리 삶의 보편적인 경험으로 확장되고, 우리는 이를 통해 우리 삶의 단면에 더욱 깊이 공감하고 몰입하게 된다.


꿈의 본질

『젊은 연인들을 위한 놀이공원 가이드』에서 재연과 지수의 놀이공원을 향한 태도는 확연히 대비된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놀이공원의 자유이용권을 쥐고 있다. 그러나 놀이기구를 타는 짧은 순간만을 꿈이 이뤄지는 시간이라고 여긴다면, 사람들 틈에서 놀이기구를 기다리는 긴 시간은 지루함과 실망으로 가득할 것이다. 재연은 우리가 ‘꿈’이라는 단어 자체를 잘못 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이용권을 놀이공원의 폐장시간까지 누리기 위해서는, ‘순수한 꿈의 눈’이 필요하다.


『고작 한 뼘의 삶』은 이 순수한 꿈의 눈이 무엇인지 더 깊게 서술한다. 기자로 일하는 화자는, 한 때 명성을 떨쳤으나 표절 의혹으로 문단에서 자취를 감춘 원로 작가 P를 인터뷰한다.


“다작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건 재능의 문제죠”


P가 말하는 재능이란 게 무엇이길래? P에 의하면 소설가의 타고난 자질과 재능은 꿈을 꾸는 것에 있다. 창작자의 삶에서 꿈꾸는 일은 더욱 중요해 보인다. 꿈을 소진한 창작자는 더이상 소설을 창작할 수 없다. P는 꿈을 소진하여 더이상 꿈을 꾸지 못하는 작가가 되었다. 결국 ‘고작 한 뼘’을 넘어 무한한 꿈의 서재를 얻기 위해서는 앞서 말했듯 순수한 꿈의 눈이 필요하다. 찰나일지라도, 우리 모두에게는 ‘불순물 없는 꿈의 눈’을 가졌던 시절이 있다. 당연하다고 여긴 많은 것들이 그렇지 않게 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꿈과 이별했던 걸까.


삶과 문학

“비유하자면 소설가는 마르고 젖은 존재인 셈이죠. 소설가는 몰라도 되는 세계를 인식함으로써 그 세계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니 글쓰기는 인식이며, 인식은 창조의 본질인 셈입니다. 그리고 창조는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에서만 나옵니다. 타인에게 이유 없이 다정할 때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의 삶의 플롯이 바뀝니다.”


소설가의 존재방식에 대한 이 구절은 독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독자는 이야기를 통해 인지하지 못했던 세계를 나의 세계로 받아들이고, 그 이야기들은 우리를 다정함과 꿈의 세계로 인도한다.


『보일러』에서 화자는 사별한 아내와의 추억을 간직한 한 노인을 만난다. 그는 노인으로부터 생전에 아내와 함께한 진평호텔의 이야기를 듣고, 경험하지 못한 그의 세계를 받아들인다. 그의 인식으로부터, 진평호텔이 실재했던 장소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타인을 향한 다정함과 완전한 공감은 타인의 상황과 마음을 완벽히 이해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르긴 해도.”

화자의 마지막 말처럼, 우리는 우리가 타인의 모르는 세계를 이해하려는 순간 진정한 공감을 이루고 이유 없는 다정함을 건낼 수 있다.


김연수 작가의 글을 읽고 있자면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찾아 소중히 손에 담아내는 이미지가 연상된다. 『젖지 않고』의 인터뷰이처럼 어두운 세상에 젖지 않고 나의 세계로 온전히 깨어나는 법을,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만으로’ 삶은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의 글을 읽는 나는 비로소 삶의 암흑마저도 끌어안을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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