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자맹 콩스탕, 『아돌프의 사랑』을 읽고
『아돌프의 사랑』의 줄거리는 매우 간결하게 요약할 수 있다. 뜨겁게 타오른 사랑, 금지된 선의 침범, 파멸. 흔히 떠올리는 고전 로맨스 소설의 서사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줄거리보다는 인간 내면의 다양한 감정이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이 책의 핵심이다. 사랑의 시작부터 변질, 종말에 이르기까지의 조밀한 감정의 서사를 따라가는 것이 독자의 몫이다.
그저 오래된 사랑 이야기겠거니 하고 가볍게 집어 든 책이었지만, 읽는 내내 사랑에 대한 다소 무거운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작중 아돌프가 엘레노르에게 느낀 감정이 진정한 사랑이었을까라는 것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의문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아돌프의 사랑의 시작은,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 대한 실험처럼 보였다. 그는 운명처럼 엘레노르라는 인물에게 이끌린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걸 해보자’고 다짐하고 그 대상을 찾아다닌 것 같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마치 사랑의 유용성이라든지 실효성을 파악했다는 듯이.
‘나는 그녀에게 선행을 베풀고 있다는 생각까지 했다.’ (62쪽)
아돌프의 사랑의 시작에는 연민의 감정이 크게 작동한 것 같기도 하다. 작품 초반부에서 아돌프는 엘레노르가 처한 사회적인 위치와 상황을 알고 있었으니, 어쩌면 약간의 동정심과 함께 눈길이 가는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 걸지도. 연민의 감정은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있나? 그 사랑이 순탄하게 지속될 수 있을까? 사랑의 감정 이후 상대에 대한 안쓰러운 감정이 따라오는 것은 자연스럽게 느껴지나, 그 반대라면 이 사랑의 예후는 불안정할 것이라 생각한다. 연민은 상대를 향한 의무감으로 이어지기 쉬워 더욱 위험하다. 의무감에 의한 마음과 행동은 쉽게 냉담해지고, 감정의 무게는 마음을 짓누르게 되며 결국 이 구속감이 사랑을 버겁게 만든다.
아무리 아돌프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라지만, 엘레노르가 이토록 아돌프를 사랑하고 집착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쯤에서 다시 한 번, 그녀 또한 정말로 아돌프라는 인간 자체를 사랑한 게 맞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아돌프라는 존재는 사회적 억압과 그녀를 둘러싼 관계망 속에서 엘레노르 자신을 구원해줄 존재였던 것처럼 보인다. 사랑이라는 명분, 아돌프라는 탈출구를 찾아낸 그녀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주지 않는 P백작과의 관계와 사회적 지위를 내던진다.
사랑의 균열은 아돌프가 엘레노르와의 관계를 ‘멍에’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발생한다.
“나는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 내던져져 있었다. 하지만 이 자유로운 상태는 나를 구속하는 멍에가 되어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들 뿐이었다.”(91쪽)
자유에도 층위가 있다. 겉으로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상태였지만, 사회적 기대와 장래에 대한 부담감, 타인의 시선이라는 무형의 족쇄에 묶인 아돌프는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스스로를 놓아주지 못한 아돌프의 모순적인 심리는 엘레노르에 관한 사랑을 파멸로 이끈다.
애초에 이들의 사랑은 복잡한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균형은 맞지 않았다. 아돌프의 우유부단함과 미성숙함은 그녀를 떠나기 위한 명분을 찾아내고야 만다. 사람은 왜 사랑을 시작하고, 왜 그것을 쉽게 버리는가? 사람은 왜 사랑이라는 명목 하에 자기 자신을, 그리고 사랑하는 상대를 파멸로 이끄는가? 『아돌프의 사랑』을 읽으며 떠올랐던 수많은 질문들의 명쾌한 해답은 찾지 못했지만, 치밀한 심리 해부를 따라가며 사랑이라는 감정과 인간 자체의 불완전함과 모순성에 대해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