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확장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이디스 워튼, 『여름』을 읽고

by 윤융

체리티에게는 ‘산’에서 난 사람이라는 일종의 컴플렉스가 있었다. 그녀에게 산은 도망치고 싶은 과거이기도 하고, 마음 한 구석의 불균형과 균열을 야기하는 근원적 뿌리가 되는 상징적 공간이다. ‘산’에 대한 체리티의 궁금증과 산을 오르려는 시도와 실패의 경험 모두 체리티의 근본적 정체성과 대면하는 일이었고, 자아와의 끊임없는 대면을 통한 채리티의 성장과정을 나타내었다.

하니와의 만남은 체리티에게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체리티가 노스도머를 떠나 하니와 크레스턴 연못에 간 것은 단순히 연애 감정의 묘사에 그치지 않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자신을 더 넓은 시야로 이끄는 경험임을 보여준다. 이 부분을 읽으며 ‘자기 내부로의 확장’은 사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숭고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얘기를 해보자면, 내가 누군가와 사랑을 하는 이유에는 나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가 만나 각자의 존재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기 위함의 비중이 크다. 어쩌면 내게 사랑의 목적이란, 나의 세계의 넓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체리티의 시점으로 돌아오자. 하니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마주한 체리티는 다시 노스도머로 돌아온 노스도머로 돌아와 체리티는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고 느끼는데, 확장적 사랑의 이면에 있는 다소 파괴적인 측면이 드러난다. 체리티는 노스도머에서의 생활에 이전보다 더욱 이질감을 느낀다. 노스도머’라는 이전의 세계에서 벗어났다고 하기보다는, 하니와의 경험으로 확장된 채리티의 세계가 더이상 이전의 세계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풀어내고 싶다. 이렇듯 채리티는 현실의 벽을 또한번 마주치게 되었고, 허무적 공상일 수 있는 하니와의 시간들을 낭만적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채리티와 하니, 두 사람의 사회적 위치가 다르다는 사실은 자명하며, 채리티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이 인식의 과정에서 채리티는 자기 자신의 내밀한 부분과의 충돌을 개의치 않는데, 그 과정의 일부에는 ‘산’에 올라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면하는 일이 있었다. ‘산’에서 채리티는 자신의 오랜 궁금증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뿌리를 확인한 후 삶의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소설의 결말이 ‘백마 탄 왕자님과의 해피엔딩’이 아니었다는 점이 처음에는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채리티가 낭만적 사랑인 하니와의 결실을 맺지 못하고 로열씨와 결혼하는 것이 자신의 사회적 처지에 대한 굴복으로 보이기도 했다. 생각을 정리하며 마지막 부분을 다시 읽어보니, 채리티는 소설 내내 능동성과 주체성을 잃지 않았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애초에 하니에게 볼티와 결혼하라는 편지를 보내며 마음을 정리한 것도 채리티이며, 결말 부분에 이르러 로열 씨와의 관계에서 편안함과 수용적 태도를 보이는 면에서도 그렇다.

당시 시대 상황에 의해 삶의 반경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여성 채리티는, 한 인간으로서 자주적인 선택을 이어 나간다. 채리티는 로열과의 결혼을 통해 또 다른 세계의 확장을 경험할 것이다. 이 때의 확장에는 하니의 아이를 가진 채리티의 모성애적 책임감이 있을 것이고, 여름날 하니와의 사랑을 통해서 얻게 된 확장을 발돋움 삼은 ‘자기 내부로의 확장’을 계속해서 이어갈 것이다.

나는 그녀가 선택한 삶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그녀의 주체적 결정이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 가치 있음을 말하고 싶다. 한 인간의 삶이 어떤 형식과 어떤 모습으로 머물든, 하나의 삶의 형태로 머무르도록 두는 것이 독자의 태도이자 나의 삶, 나아가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태도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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