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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르 Jun 01. 2020

귓등으로도 안 듣지만 사랑해

5월 말의 산책길  


여름 냄새가 나는 5월의 끝자락.  21개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우리 세 식구는 집을 나섰다.  


“ 와 날씨 진짜 좋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내가 감탄을 하며 말했다. 

“그러게, 바람도 시원하고 오늘 정말 날씨 좋다.”  남편이 대답했다. 


독일에서 여름에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다.  스치는 바람에 무성한 나뭇잎이 춤추는 소리, 그 사이 어딘가에 숨어있을 작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 분수대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 아이스크림 트럭 아저씨가 놀이터에 도착해서 흔드는 빨간 핸드벨 소리…



우리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계절을 각자의 감각을 통해 느끼며 걸었다. 


한참을 걷다 내가 말했다.

“어디서 꽃 향기가 나.” 


“그래?”  곧이어 남편이 다시 말했다. “ 저기 마세라티가 있네.”


“그렇구나!” 하며 이번엔 내가 다시 말했다. 

“ 우와 여기 아카시아 나무가 있었네! 어쩐지 향이 곱더라.”



 분수대를 지날 때 즈음 딸아이가 말했다.

“뼁기나 나와라” (펭귄아 나와라) 

아이는 처음 방문한 동물원에서 콘크리트로 된 물웅덩이에서 놀고 있는 펭귄을 본 후, 분수를 지나칠 때마다 펭귄을 호출한다. 



“시아는 펭귄이가 보고 싶구나.” 하고 대꾸해주며 남편은 계속 말했다. 

“저 페라리는 나온 지 꽤 됐는데 아직도 예뻐.”



그러자 예쁘다는 말을 알아들은 아이가 대꾸했다.

“이뻐 이뻐”




그렇게 우리 셋은 서로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정성스럽게 대꾸하며 여름 속으로 계속 계속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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