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과거
"이 정도면 되겠지?"
그는 마지막으로 두꺼운 통나무들을 가져오며 말했다.
그녀는 멀리 재단 같을 걸 만들어 그 위에 얹어놓았고, 지금 우린 모닥불을 피워야 했다.
"굳이 화장을 시켜야 하는 이유는 뭐야?"
"그녀는 삶에서 계속 내가 그녀를 바라봐주길 원했어. 부담스러웠던 탓일까, 난 계속 외면했지만 말이야. 마지막은, 찬란하게 어둠을 밝히는 하나의 '빛'으로써 마감해 주는 게, 그녀를 위한 최선이 아닐까?"
"..."
오랜 시간동안 나무를 주운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화르륵!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화염은 확실히 이목이 집중될 법 했다.
"D."
왜 갑자기 나를 부르는 거지?
"넌, 날 어떻게 생각했어?"
"갑자기 왜 묻는 거냐."
"여러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너가 했던 말도, 너의 행동들도."
"이제 와서 고민해 봐야 소용없다. 이미 지난 일 아닌가?"
"그래도.."
그의 무의미한 요구를 들어줄 여유는 없다. 내 몸도 거의 회복되었으니, 곧 배트를 들고 뛰어다니는 것쯤은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껏 기만자에게 의지했던 것도, 내 회복을 위해서였으니.
그는 잠자고 일어나 한 나뭇조각에 불을 붙였다.
"난 너와 친구가 되고 싶었어."
"..뭐라고?"
"말했잖아. 난 너와 친분을 쌓고 싶었어."
그의 입에선 분명 거짓부렁이 튀어나오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그저 저들끼리 놀기 바빴고, 혼자 있는 너가 왠지 안쓰러워보였어."
...거짓말...
"그래서, 너와 야구를 하고싶었지."
"거짓말!!! 죄다.. 거짓말이잖냐!!!"
"아니, 난 진심이야. 내 행동이 잘못 받아들여졌다면, 내가 사과하지. 내 의도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고 난 말하고 싶었어."
사과를 하고있다.
야구를 하고 싶었다고?
"네가 날 어떻게 상대했는지는 잊은건가?"
...
항상 나를 상대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있었다면.. S정도.
야구 배트를 잡은 나와, 글러브를 낀 그.
우리 둘은 해 질 녘 무렵 항상 운동장에서 야구공과 함께였다.
"오오! 점점 느는데 D? 확실히, 연습이 효과가 있나 봐?"
"빨리 던지기나 해 S."
야구공이 운동장 끝에서 끝까지 오가는 움직임이 이어진다.
공이 날아오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날아가는 속도도 점차 빨라진다.
"허어.. 이제 이 정도면 됐지?
이제, '혈투' 시작이야!"
"굳이 '혈투'라고 하는 이유가 있어?"
"엥? 그냥 멋있잖아!"
우리의 야구는 항상 '혈투'로 끝났다.
많은 야구공을 얼마나 멀리 날리나, 얼마나 많이 홈런을 치나.
그리고, 당연하게 항상 이기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헤헤, 이번에도 내가 또 이겼네."
항상 정해진 결과를 보기 위해 나와 상대하는 게
"그래도 점점 따라잡히고 있네. 나도 더 분발해야겠어."
기만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럼 다음엔 이길 수 있게 조언 한 번 해줄까?"
의미 없는 조언 따위 들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
"앞으로, '한 수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해!"
뭐?
한 수 앞?
"미래를.. 내다보라고?"
"정확하진 않더라도, 미래를 볼 수 있어야 나 같은 것도 이길 수 있겠지?"
그가 내어준 조언은, 누군가에겐 피와 살이 될 수 있었겠지만,
내겐 그저 분노로 작용했을 뿐이었다.
"어차피 결과가 뻔한 싸움을 계속하면서 뭐? 이길 수 있게 미래를 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지 마!"
그 말을 끝으로 내가 배트를 잡는 일은 없었다.
사실, 배트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서 던져버렸기에.
...
"넌 내가 패배하는 걸 보면서 즐겼잖아. 이어지는 승리에 우월감을 느끼며, 날 기만했을 뿐이잖아!!"
"뭐? 지금 뭐라는 거야?!"
"그것뿐만이 아니야, 그저 피를 뽑을 뿐인 실험에서 뭐? 죽을 거 같으니 살려달라고? 과장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그렇게나 날 어리석게 만들고 싶었나?!!"
"뭐라고?? 너와 난 특성이 달랐어! 네 '힘'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난 신체적으로 강해졌었어. 뭘 모르는 건 너야! 팔을 자르고 다리를 찢으며 '얼마나 재생할 수 있을지' 실험하고, 뇌에 강제로 마약을 집어넣으며 '이성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가'를 테스트했어. 매일매일매일매일 온갖 반인륜적인 실험을 자행했다고. 그런데 뭐? '과장' 아무것도 경험해 보지 못한 너가 뭘알아? '고통'에 대해 알고있는 게 있기는 해? 사람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게, 공포로 소리 지르는 게 어떤 느낌인지는 아는거야? 실제로 보기는 했어? 남들의 고통을, 아니, 너 스스로의 고통을 느껴 본 적은 있냐고!! 대답해 D!
넌 무슨 세상을 보고 있는 건데!!!!!"
...
왜 다들 내가 보는 세상을 궁금해하는 거야.
난 너희와 다르지 않은데.
너희와 같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넌...잘못 보고.....있...."
난 틀리지 않았어.
난 옳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어.
"난.. 자네가 보는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겠네. 자네 눈에 무엇이 보이는지.. 알 수가 없어."
내 눈엔 그저 세상이 보일 뿐이야.
다른 게 보이는 게 아니라고.
"날 봐!! 날 봐.. 제발.. 마지막은 날 바라봐달라고.."
...
다른 사람들은, 뭘 보는 거지..?
"당신이 보는 앞이라면.. 기꺼이..."
도대체 왜? 뭘?
다른 사람들은 뭘 보고있는 거지?
나와 그들은 뭐가 다른 거지?
왜? 왜? 왜?
"대답해라 D!!! 넌! 뭘 보고 있는 거냐!!!"
...
더 이상 떨리는 어깨를 막을 수 없다.
쥐어진 주먹은 펴질 수 없다.
지나온 과거도 피할 수 없다.
내가 봐온 세상도,
내가 행해온 행동도,
지금껏 뭘 바라보고 행한 거지?
난 뭘 본 거 지 ?
"그럼..."
"..?"
"그럼 난 뭘 봐야 하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