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복귀

by Eian Lim

2부


desire [ dɪˈzaɪə(r) ]


1. 욕구, 욕망, 갈망; 바람




7. 복귀




저번 주에 T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저저번 주였는지도.

어질러진 집은 점차 정돈되어 본래의 모습을 찾아갔고, 진동하던 피비린내도 점차 개선되어 갔다. 나아지지 않는 것은 저들의 마음뿐이었다.

한 사람이 없을 뿐이라며 되내이던 난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누군가 없다 한들 난 계속 3층에서 지낼 것이고, 아직까지 내 역할 또한 변한 게 없다. 또, 꿈이 사라졌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런 꿈을 꾸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꿈을 꾸는 것이 안전을 향한 길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 꿈이 무엇이든 간에 난 쾌적한 수면을 되찾았다.

아침 해가 떠오르고, 강렬한 빛에 잠에서 깼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만큼 평온하다고 인식되는 아침이었다. 아침을 위해 2층으로 향하자, T가 있어야 할 자리에 J가 서 있었다. 며칠이 지나도 적응이 안 되는 느낌이다.

가끔 J에게서 T의 모습이 보인다. 먹고 싶은 메뉴를 물어보던 모습이, 잔반 말고 새로 한 음식을 먹으라고 강조하던 모습이, 설거지를 하던 모습이 보인다.

난 내 손으로 그를 죽였다. 내 몸이 그의 피로 범벅될 때까지 무참히 썰었다.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심장이 조여오기 시작한다. 귀가 멍해진다.

그게 옳았을까. 죽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지는 않았을까. 오늘도 고민은 이어진다.


난 무한히 이어지는 복잡한 생각들을 마무리했다.

'어쩔 수 없었다'는 간편한 대답으로 말이다.


J에게 물었다. "오늘의 메뉴는 뭐야? 스파게티인가?" J가 흠칫 놀란다. 그녀는 실제로 스파게티를 준비 중이었고, 특유의 소스 향이 느껴져 물어봤던 것이었다. 다만, 그녀가 놀란 이유는 내가 음식을 맞춰서가 아닐 것이다. 그녀 또한 T의 첫 요리에 이끌렸던 것이다.

식탁엔 붉은색 소스의 면 요리가 올라왔다. J는 포크와 숟가락을 건넸다. 그녀의 눈엔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울먹이는 소리만이 부엌에 퍼졌다. "체하지는 말고.." 겨우 입을 연 그녀는 그렇게 방으로 들어갔다.

면을 한 입 가져다 대보았다. 정성이 느껴지는 맛이다. 하지만,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다. 분명 평소보다 맛있는데, 풍부한 맛이 느껴지는데, 중요한 게 없는 느낌이다.

소스의 붉은색이 점차 선명해진다. 더 이상 과거의 토마토 향기는 느껴지지 않고, 손의 포크는 칼로 변모한 지 오래다. 칼부터 팔까지 소스가 묻혀있다. 시선은 칼에서 다시 식판으로 향한다.

식판엔 괴물의 얼굴이 놓여있다. 그것은 마치 소리 지르기 위해 준비하는 듯 보였다.

철 비린내가 코를 메우고, 근육이 수축된다.


찌르는 게 맞는 걸까.

찔렀던 게 옳은 걸까.


내 팔엔 힘이 들어간다.


...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


...


접시가 깨지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내 손엔 소스와 접시 조각이 박힌다. 식탁에 꽂힌 칼은 포크로 바뀌었고, 괴물의 얼굴도 사라졌다.


그래. 난, 옳았던 거야. 이곳의 안전을 위해, 우리의 평화를 위해.


그렇게, 난 J의 정성을 쓰레기통에 처분했다.


손에 박힌 접시 조각을 빼내며, 내 발걸음은 어딘가로 향했다.

문고리를 열고, 바깥으로 향한다. 정말 오랜만에 햇살을 느꼈다. 방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소 다른 느낌이다. 풀 냄새가 코를 찌르고, 집보다 촉촉한 공기가 내 피부를 통해 느껴진다. 그렇게 향한 곳은

T의 무덤이었다.

주변에서 하얀 꽃을 꺾었다. 꽃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을 테지만, 입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순간에 생명에서 물건으로 전락한 흰 꽃을, 무덤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미안. 난 어쩔 수가 없었어. J를 구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고, 집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어. 그곳에서.. 아니, 사후세계라는 게 있다면,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내."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꽃과는 다르게 입이 있음에도 말이다.

오래도록 반응을 기다려도 소용없다. 돌아오는 건 건조하게 머리를 넘기는 바람뿐이다.

"그래. 이제 끝난 거야." 하얀 꽃만이 흔들렸을 뿐이었다.

집으로 들어가려는 도중, 돌아오던 K와 마주했다.

"T를.. 만나고 온 건가." 그는 물었다.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T를 만났다기보단, 무거운 짐을 덜고 온 느낌만이 들었을 뿐이었다.

".. 그런 셈이죠." 난 응답했다.

"그래. 너도 마음고생이 심할 거야. 너 손으로 그를.. 아니다, 지금 언급하는 게 오히려 해가 될 테지. 오늘은 편히 쉬도록 해." K의 입가는 떨리며 올라갔다. 힘겹게 지어 보인 그 미소는 짙게 드리운 다크서클과 대조를 이루었다. 그는 위로를 끝으로 문을 열어 들어갔다.

가볍게 발을 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덤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난 흔들리려 하지 않는 것일까.

그래, 그것이다.


우린 평화롭기 때문이다.


먼저 간 K를 따라서,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태양은 진다.

우리의 마음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시간은 야속하게 흐르고야 만다.


저녁 식사를 하며 M에게 창문이 고장 났다는 사실을 들었다. 평소 같았다면 혼자 고쳤을 텐데, 본인의 컨디션 부족으로 같이 고치는게 어떻냐는 제안도 덧붙이며 말이다. 컨디션이 안 좋다는 가벼운 말 한마디가 거슬리지만, M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을 텐데.. 더 빨리 다가갔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텐데.." M은 그렇게 중얼댔다. 비슷한 나이대로써, T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웠을 M은 그때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없다.

난 M에게 위로를 건넸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들 몫까지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진실된 평화다. M은 나에게 불완전한 미소를 비춰 보였다. 금방이라도 망가질 듯한 그 미소는 무너질 듯이 떨리고 있었다.

어느 정도 추스러진 감정처럼, 창문도 거의 고쳐졌다. M에게 감사를 표한 후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의 공허한 눈길이 날 비췄고, 그의 무거운 발걸음이 내 방을 빠져나간다. M은 조심스레 방문을 닫고 잘 자라며 외친다. 본래 그의 목소리는 집안을 울릴 정도로 활기찼었지만, 지금은 좁은 내 방마저 그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였다.

침대에 누워 창문을 보았다. 고친 지 얼마 안 됐음에도, M의 미소처럼 곧 무너질 듯한 모습이었다. 그믐달의 하늘은 방을 어둡게 비췄고, 칠흑 같은 어둠은 나에게 불안감을 주었다.

M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다. 다른 이들도 분명 힘들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M은 더욱이나 심각해 보였다.

하지만, 평화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

그렇게 난 잠에 들었다. 그림자라는 이불을 덮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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