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1일
높고 고귀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주님께서는 온유한 이들에게 당신의 신비를 보여 주신다.
(집회서 3,19)
지난여름 끝자락에 뒤늦게 수험생활을 시작한 아이는 수능 몇 과목 만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올해는 준비한 그 몇 과목에서 목표한 점수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수시원서를 논술로 지원을 했다. 수능에서 준비한 과목으로 최저를 맞출 수 있으면 논술 시험도 응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불과 몇 달 전에는 올해 졸업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공부를 시작하면서 지금은 수능최저를 맞춰서 올해 지원한 학교에 응시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 수 있으면 아이가 조금 자신감이 생겨서 내년에 활기차게 시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마음속 욕심이 더 커져서 운이 좋아 올해 지원한 학교 어디에든 붙게 된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내년에 좀 더 높은 목표를 가지고 다시 도전할 생각을 아이가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확대가 된다.
늘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아이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 어떤 상태인지 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아이의 상태를 정의하고 내가 바라는 희망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을 거 같으면 안타까운 마음에 아이에게 근거 없는 희망 고문을 하거나 아이를 독촉했던 것 같다.
오늘 아이가 시간낭비인 것 같다면서 논술학원에 가지를 않겠다고 했다. 논술을 배운 적이 없어 뒤늦게 열리는 학교별 파이널 강의 4회분 수강을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1회의 수강료는 환불을 받았다. 몇 주 전부터 학원에 가지 않으면 안 되냐고 물었는데, '그냥 해보자~. 잘 될 거야.'라는 어설픈 말로 내가 또 밀어붙였다.
나는 나의 기대를 아이 어깨에 큰 부담으로 얹었고 아이는 버거운데도 불구하고 엄마가 실망할 모습에 마음이 쓰여 애써 참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오늘 다시 학원에 안 가면 안 되겠냐고 물었을 때 나는 조금 망설였지만 그러라고 했다. 나의 지나친 욕심이 허황된 기대를 만들고 또 아이에게 부담을 주고 있었던 것 같아서.
얼마 전까지 우울증으로 평범한 일상이 어려웠던 아이였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야단을 쳤다. 아직 몸과 마음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있는 힘을 다해 애쓰고 있는 아이라는 것을.
부족하지만 엄마의 기대를 조금이라도 충족시켜 주려고 마음을 쓰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나를, 나의 기분을, 나의 감정을 더 살피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엄마가 미안해. 더 좋은 엄마를 만났으면 우리 안드레아도 행복했을 텐데, 부족한 엄마라서 미안해'라고 중얼댔다.
'주님,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소서 최선을 다한 후에 얻은 결과가 어떤 것일지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주님의 성실한 자녀가 되게 하소서.'
오늘의 기도는 아이가 아니라 나를 위한 기도였다. 그렇게 또 주님께서 나의 부족함을 알게 해 주시고 채워 주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