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이 궁금하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아이를 구별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길 가다가 또는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또래의 아이들이 모여 있으면 우리 아이인가 아닌가 유심히 보게 되었다. 내 눈에는 아이들의 옷차림, 가방, 헤어스타일이 모두 똑같아 보였다.
불과 몇 년 전 아이가 초등학생 일 때만 해도 넓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 아이를 금방 찾아내곤 했었는데 이제는 내 자식도 구분 못하는 엄마가 되었다.
눈이 침침해져서 사물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기도 하고,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게 되면서 얼굴에서 식별이 가능한 건 밖으로 보이는 눈과 눈썹이 다여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가까운 사람을 구분하는 건 얼굴 특징만이 아니기 때문에 내 아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은 더없이 마음을 허탈하게 만든다. 아마도 아이와의 관계가 멀어진 시간이 오래여서 아이 얼굴, 아이 모습을 제대로 못 봐서 그런 거라는 무거운 마음 때문에 더 유난히 예민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통통한 볼살과 쏟아져 내린 앞머리, 장난기가 섞인 웃음과 재치 있는 말대꾸, 우스꽝스러운 리액션의 가볍고 꾸밈없고 구김 없는 모습에서 아이가 변했다는 게 느껴지는 순간은 생각보다 불시에 찾아왔다. 어느 날 본 아이의 모습은 얼굴 윤곽이 선명해져 있었고 콧날이 높아져 보이며 이상하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즈음 아이와 시선을 마주하는 일이 점점 드물어졌고, 대화를 해도 아이는 나의 시선을 피해 바닥이나 엄한 곳을 응시하며 말을 건네었던 것 같다. 잠깐의 외출에도 거울 보는 일이 많아졌고 인위적으로 만든 앞머리의 어색한 헤어스타일을 고집했다. 대답도 기분에 따라 선택적이었고, 언어가 아닌 감정의 소리로 반응하는 일도 종종 있었고, 시간의 개념도 없어지고 사회성은 점점 퇴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아이의 변화에 대한 인지는 옷에서도 나타났다. 사계절 아이가 입는 옷의 90%가 검은색이었다. 옷에는 아무런 무늬도 없어야 하고, 옷의 상표도 아주 작게 왼쪽 가슴이나 목 뒤편에 있어야만 입었다. 바지는 일률적인 검은색 면바지나 검은색 스포츠웨어(운동복)였다. 아이의 의류 중 흰색은 교복 안에 받쳐 입는 티셔츠나 양말 정도이다. 새 옷을 구입할 때 더 이상 나 혼자 옷을 고를 수도 없었고 아이도 자기가 고른 옷만 입었다.
이러한 옷차림이나 옷색깔에 대한 변화는 또래 아이들에게서의 공통 현상인 것 같다.
밝은 색 옷을 입어야 얼굴이 환해 보이고 마음도 생각도 긍정적이고 밝아 보이고,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주게도 되는 것 같은데 청소년 아이들은 모두가 일률적으로 무채색의 옷만을 고집한다. 그것이 내가 우리 아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큰 원인이기도 한 것 같다.
무채색의 옷을 선호하는 아이들을 보면 생각도 무채색일 것 같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보다는 지루하고, 지치고, 무기력할 것 같고, 명확하고 당당하기보다는 별 특성 없이 단순하고 무감각할 것 같은 느낌이다.
또래의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무슨 대화를 할까. 무엇에 관심을 두고, 어떤 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바랄까. 그리고 그런 아이들에게 학교는 어떤 의미일까. 우리 어른들은 어떤 존재로 여길까.
한심하고 화가 나고 이해불가한 존재라고 치부하다가도 걱정되고 궁금하고 알고 싶고 또 함께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