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버텨낼 힘이 없다
"아이는 잘 키우기 위해 낳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는 사랑하기 위해 낳는 거예요"
우연히 온라인 방송을 보다가 한 소아정신과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되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느 만큼 시간을 되돌리면 다시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일까.
한참 동안 어디를 응시하지도 않은 채 멍하니 있었다.
아이의 방황이 길어지면서 이제는 기다리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버텨내는 심정이었다.
퇴근 후 아무 인기척 없는 집에 말없이 들어와야 하는 것도, 늘 닫혀있는 방문을 보는 것도, 그릇 하나에 밥과 반찬을 담아와 내 책상에서 허겁지겁 식사를 해야 하는 것도, 한여름 푹푹 찌는 더위에도 방문을 닫고 방안에만 있어야 하는 것도 아이와 한집에 살기 위해 내가 버텨내는 시간이고 방법이었다.
나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욕하는 것도 다 괜찮은데, 나 때문에 자기 인생을 망치지는 말아야 할 텐데.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간인데, 나중에 얼마나 후회하려고 저럴까.
저렇게 의지도 끈기도 없어서 어떻게 세상 살아가려고 그러나.
다들 착하게 열심히 사는데 도대체 뭐가 불만일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렇게 아이에 대한 생각이 걱정에서 원망으로 변해가면서 이제는 더 이상 '엄마'라는 거 하고 싶지가 않다.
태어나서 유아 시절 한창 재롱을 부릴 때 그때 아이가 주었던 기쁨과 즐거움에 대한 보답으로 부모는 아이를 키운다고 한다.
둘째는 아기 때 얼굴이 하얗고 이쁘장하게 생겨 밖에 데리고 나가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귀엽다고 한 번씩 쳐다보고 만져보았고 그럴 때면 괜히 으쓱해지곤 했다. 자라면서 눈치 빠르고 똘똘하고 재치 있어서 남들한테 아이의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전할 때가 많았다. 아이다운 생각과 아이 수준에서의 행동이 나에게는 재미있는 화젯거리였고 흐뭇한 웃음을 주었었다.
시간이 되면 아이와 언제나 붙어있으려고 했고 늘 친구 같은 엄마이고 싶었다. 아이한테 좀 더 좋은 길, 더 나은 길을 알려 주고 잘 이끌어 주고 싶었다. 그것이 좋은 엄마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은 나에게 힐링이었고 휴식이었다. 내 삶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마다 그만큼 나는 아이한테 더 집중하고 집착(?)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 아이는 내가 도저히 상상을 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며 학교 생활을 엉망으로 하였다. 생활습관도 무너져서 밤새 게임을 하고 학교를 지각하고, 별 시답지 않은 이유로 조퇴와 결석을 일삼았다. 시험시간에 자거나 답안지를 한 줄로 찍고 오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내고 졸업식 날이 되었을 때 나는 부모로서 느끼는 졸업의 기분도 느낌도 전혀 나지 않았었다. '그냥 시간이 지났다고 하는 졸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가 한없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고등학교 입학을 하며 이제부터 열심히 살겠다는 아이의 한마디 말에 잠시 희망이 생겼었다. 그래도 똘똘한 아이니까, 본래 승부욕이 있는 아이니까 목표가 있으면 추진력 있게 잘할 거라 믿으며 미리 앞서 부푼 상상을 했었다. 나는 부모들에게 '아이에 대한 기대를 놓으세요, 마음을 비우세요'라는 조언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아이한테는 희망을 먼저 보고, 조금이라도 기대를 가지게 되는 게 부모의 똑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더 거칠어지고, 더 막 나가고, 나와 모든 대화마저 차단했다. 핸드폰 통화도 문자도, 카톡메시지도 모두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고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연락할 길이 없었다. 지나치면서라도 얼굴을 보지 못하고 여러 날이 지나가는 적도 종종 있었다. 내가 거실에 있으면 아이가 나오지 않아 나는 퇴근 후 방 안에서만 지내야 했다. 식탁에 밥을 차려 놓고 방에서 기다리고 거실이 조용해지면 나가서 치우고를 반복했다. '밥이라도 먹으면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수없이 쓸어내렸다.
아이의 행동 어느 것도 통제할 수가 없고, 아이 생활에 규칙이라는 건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게 되면서 아이는 점점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 같아 보였다. 내가 나의 좁은 틀속에 아이를 가두려고 한 건 아닌가 반성하다가 또 지나치게 내가 불안해하는 건가 되짚어 생각하며 하루에도 수없이 아이에 대한 생각으로 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지내고 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도무지 모르겠고 답답할 뿐이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갈 때면 점점 집안 분위기에 숨이 막혀온다
아이 행동에 대한 비난의 화살도, 나의 잘못에 대한 질책의 화살도 깊게 파여 아물지 못하는 상처가 되어 버렸다. 더 이상 버텨낼 힘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