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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정 Feb 17. 2022

모녀 여행으로 좋았던, 태국 치앙마이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우리 엄마도 여행을 좋아할 거란 것을. 알고 보니 그저 사는데 바쁘고 치여 등한시해둔 것이었을 뿐, 여행을 좋아하는 나의 피는 우리 엄마에게서 온 것이 맞았나 보다. 사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나는 엄마에게 어떤 효도를 앞으로 해드릴 수 있을까? 엄마를 위해 그토록 원하시는 결혼(!)을 차마 억지로 해드릴 수는 없을 듯하니 그렇다면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여행’을 직접 모시고 가서 효도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그렇게 해서 떠난 곳, 그곳이 내게는 치앙마이다. 


치앙마이에서 발견한 엄마의 감성 

태국 북부에 위치한 치앙마이는 시즌에만 전세기가 뜨는 지역이다. 성수기에는 골프여행으로도 많이 떠나기 때문에 우리나라 여러 항공사들이 앞다퉈 전세기를 띄우기도 했었다. 직항으로는 4시 반이면 도착하지만 이게 없다면 방콕을 경유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의 시간이 소모되기도 한다. 내가 처음 치앙마이를 갔던 때에는 전세기가 없어 마치 미국 여행 가듯 오롯이 하루를 투자해 다녀왔던 기억이 난다. 


여행지로서의 태국을 사랑하는 나이지만 치앙마이는 태국 속 또 다른 태국의 느낌이다. 타 지역에 비해 평균적으로 비교적 서늘한 날씨에, 산책하듯 걸으면서 느긋하게 자유여행을 즐기기 좋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게 입소문이 나자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는 한달살이를 하러 가는 여행자들이 부쩍 늘어 현지에서는 급작스럽게 증가한 외국인 방문객의 수요를 위해 아파트나 레지던스의 수가 확연히 늘어나기도 했다. 


엄마와 가는 여행은 숙소 선택부터 신중해진다. 친구들과 간다면 어떤 숙소에서든 잘 머물 수 있겠지만 엄마라면 그 이야기가 달라진다. 엄마가 좋아할 것 같은, 야외 수영장이 있고 나무들로 둘러싸인 야외식당이 자리하고 있는 호텔로 예약을 했다. 역시나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엄마는 숙소에 들어선 순간부터 이미 감탄을 하고 계셨다. 패키지여행이 아니었으니 서두를 것도, 무언가를 꼭 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없었다. 아침을 먹고 싶을 때 조식당에 가면 되고, 이도 저도 안 내킬 땐 룸 안에 앉아 야외수영장을 바라보며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재미 또한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엄마는 관광지를 원하시는 게 아니었음을 나는 이미 느끼고 있었다. 모처럼 여행이란 걸 떠나왔고 그 자체를 즐기시는 것만으로도 그저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도이수텝에서 소원을 빌다

불교신자인 엄마를 모시고 가장 먼저 간 곳은 도이수텝 사원이다. 도이수텝은 ‘수텝’이라는 산의 사원이라는 뜻으로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207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보이는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태국 사진에서 늘 우리가 봐왔듯 이곳 또한 온통 황금빛으로 칠해진 여러 탑들로 인해 온 사방이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거대한 황금탑을 중심으로 이곳에서 판매하는 작은 종을 구입해 자신의 이름과 소원을 적은 후 이를 기원하는 풍습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원 중심부에 자리한 가장 크고 화려한 황금탑 주변의 적당한 위치에 종을 걸고 이곳을 한 바퀴 돌면서 소원을 비는 것으로 의식은 마무리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똑같은 행렬과 모습으로 이를 행하고 있었으니 나와 엄마도 역시 자연스레 그곳에 끼어들어 서로가 간절히 바라는 소원을 빌어보았다. 지구 상 어디서든 사람 사는 것이 뭐 특별한 것이 있을까? 맛있는 것 나눠 먹을 가족과 소중한 사람의 안녕을 기원하고, 불행이 안 생기길 바라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강이 늘 나와 함께 해주기를 바라는 것. 이 정도의 기원과 바람은 아마 누구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그곳에서 나와 엄마의 행복을 빌어보았다. 간절한 염원을 바라며 진심을 담아 기도하고 있던 그 거대한 행렬 속 현지인들 틈에서 말이다. 


도이수텝에서 내려다본 치앙마이는 상당히 이국적이었다.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지만 저멀리 보이던 숲과 도시의 풍경을 감상하며 나는 이 높고 아름다운 곳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엄마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감사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자주 그리고 많이 가야 할 이유가 명확해졌다. 무엇보다 엄마의 행복한 얼굴 표정에서 이미 그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혹여 딸에게 부담이라도 될까 싶어 딱히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커피를 왜 즐기는지 맛도 잘 모르시던 엄마가 이젠 나와 함께 카페에 들어가 본인이 원하는 메뉴를 자연스럽게 주문하시게 되었고, 태국식 마사지에 한껏 길들여진 엄마는 이제 어디가 불편하니 더 해줬으면 좋겠다 라는 의사 표현까지 하시게 되었고, 낯설고 색다른 메뉴지만 태국 음식에 도전하면서 맛보시는 엄마를 보고 있으려니 이 정도라면 이번 여행에서 엄마의 여행 스킬은 충분히 많이 늘어난 것 같았다. 


평생 가장 가까운 사람이지만 마음먹지 않으면 함께 할 수 없는 존재, 엄마.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런 효도를 엄마에게 해드릴 수 있어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앞으로의 내 여행에 얼마나 재미있고 즐거운 엄마와의 추억들이 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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