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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정 Mar 10. 2022

경주 대릉원에서 길을 잃다

(대체 그날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부끄럽지만 사실을 고백하자면 경주는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 이후 첫 방문이었다. 요즘 그곳이 그렇게 ‘핫플’이 많고 사진 촬영하기 좋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막상 직접 가보지 못해 아쉬워하다가 드디어 방문을 하게 되었다.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처음 도착해선 예상외로 화려하고 번잡스러운 도시의 모습에 놀랐다. 내가 기대했던, 사진으로만 보던 경주와는 많이 달라서 이내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황리단길은 모든 곳이 상업적으로만 보였고, 동궁과 월지는 인공적인 꾸밈으로 가득해서 들어가서 걷자마자 금방 질려버렸다. 불국사는 입장료에 놀라서 기분이 별로였다. 다른 사찰은 1, 2천 원이던데 왜 이곳만 6천 원일까? 월정교도 밤에 멀리서 잠깐 봐서 인지 특별한 감흥은 느끼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런 내게 경주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손꼽으라면, 대릉원에 갔을 때였다. 사실 낮시간까지 당연히 관광을 모두 끝낼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예정에 없던 밤을 그곳에서 보냈던 건, 그 이전 방문지였던 경주엑스포대공원에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즐기느라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 그 후 허겁지겁 뛰어 대릉원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대릉원은 우리나라 대표 관광지답게, 쉽사리 만나 뵙기 어려운 신라시대 왕과 왕비의 무덤을 늦은 밤 10시까지 매일 운영하며 영접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놀라운 사실을. 나와 같은 관광객에게는 이 얼마나 큰 인심인지!


덕분에 나는 해가 지던 시간에 들어가 깜깜해진 밤에 그곳을 나와야 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하늘과 조명, 그리고 그에 반사되는 빛에 따라서 매 순간 달라 보이던 능과 능 사이의 곡선, 그리고 그 주변을 감싸고 있던 아름다운 연못과의 조화! 이 풍경에 취해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느라 바빴다. 주위를 둘러보니 담장 너머로 살짝살짝 보이던 황리단길은 어느덧 화려한 밤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고, 거짓말처럼 웃기게도 이때 즈음부터 나는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게 되었다. 휴대폰의 배터리가 모두 소진된 것도 모른 채 그곳을 걷고 있었던 까닭이다. 마침 옆에 있던 친구는 세상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끝내주는 길치. 나는 서울촌사람이고, 그친구는 그 지역에 능통하지만 밤중에 길을 못찾으니 무용지물이었다. 어두워지니 표지판은 잘 안보이기 시작했고 출구를 찾아 왔다갔다 하다 보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리 멋있어 보이던 왕의 능들이 무서워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다 곧, 오늘 여정에 없던 신라시대 귀신들을 떼거지로 만나게 되지 않을까?”하는 어처구니없는 상상까지!


그 밤에 취해, 그리고 대릉원의 멋스러움에 반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싶다. 그렇게 잠시 헤매이다가 다행히 친절하던 현지분들에게 길을 물어 우리는 출구를 찾아 나올 수 있었다. 바깥 세상으로 무사히 나올 수 있음에 어찌나 감사하던지! 경주를 다녀온 수많은 여행자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이런 비슷한 추억을 가진 사람이 또 있을지? 없을거라 장담하기에 감히 이렇게 물어본다. ㅎㅎ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날 그렇게 왕들의 무덤가에서 길을 잃었던 기억은 지금도 내가 경주를 기억하는 가장 재미난 순간이 되어버렸다. 역시 여행은 질러야 맛이고, 사건사고가 터져줘야 이렇게 에피소드가 생긴다는 사실!


지금도 어디선가 대릉원의 사진을 볼 때면 그날의 일이 떠올라 매번 웃음이 터진다. 벚꽃 가득한 봄이 시작되면, 찬란하게 아름다울 경주의 대릉원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그땐 벌건 대낮에, 100% 충전한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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