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면서 겪게 되는 불운이 종종 있다. 원치 않지만 겪고 지나가야만 하는 그런 일들, 통과의례였다고 믿고 싶은 그런 것들.
스위스로 가족여행을 갔다. 오랜 시간 많이 꿈꾸던 그 로망을 드디어 이룬 것. 늘 그랬던 것처럼 여행 일정과 준비는 내가 도맡았고, 절친과 그의 어머니까지 초대를 했다. 이왕 가는 거 2명 더 늘어난다고 큰 문제 될 것도 없었고, 친구 직업이 승무원이었지만 아직 국제선 비행기 한번 못 타봤다는 친구 어머니가 안타까워 같이 모시고 가자고 내가 먼저 제안을 해서 다 같이 떠나게 되었다.
비행기를 경유해 스위스에 도착한 첫 순간. 설레고 행복한 마음에 기분은 하늘을 날 것 같았고, 내 목적지를 가기 위해 그 시설 좋다는 스위스 기차에 올라탔다. 분명 우리 어머니는 내게 물었다. 기차의 짐칸에 트렁크를 두어도 되겠냐고. 나는 큰소리를 치며 “스위스는 잘 사는 나라잖아? 당연히 여기다 두면 되지”라고 말하곤 바로 들어가 내 자리에 앉았다. 한참 기차로 이동을 했고 드디어 내가 내릴 차례. 트렁크를 하나씩 꺼내 내리는데 내 친구 트렁크가 안보였다. 이럴 수가! 누군가 짐칸에 쌓여 있던 트렁크 중 맨 위에 있던 걸 들고 튄 것이었다. 믿고 싶지 않지만 믿어야만 했던 그 순간. 기차역 역무원에게 설명하고, CCTV를 보여 달라고 했지만 CCTV가 없다는 설명만 되돌아왔고, 일단 목적지였던 체르마트 숙소에 체크인을 한 후 경찰서로 향했다.
비싼 옷 잔뜩 들고 왔는데 어쩌냐며 울상 짓는 친구를 애써 위로하며 그제야 나는 우리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 경찰관을 쳐다봤는데, 영화배우 뺨치게 생긴 스위스 남자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절로 금방 분위기는 좋아졌고, 사고의 자초지종을 길게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미친 건가 이 와중에(친구야 미안 ㅜ.ㅜ)! 그렇게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니 급 비관 모드였던 모든 것이 다시 장밋빛의 여행자 분위기로 바뀌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단순하고도 놀라운 사실. 아쉽게도 스위스 여행을 다녀오도록, 범인을 잡았다는 연락은 비록 받지 못했지만.
미국 서부 로드 트립을 할 때였다. 친구들과 렌터카를 빌려 여행하고 있었고, 모뉴먼트 밸리 근처를 달리고 있을 즈음이었다. 계속 똑같이 펼쳐지는 사막의 길 위에서 운전을 하지 않던 친구들은 모두 잠이 들어 있었고, 운전하는 친구만 열심히 앞을 쳐다보며 달리고 있던 그때. 그 적막을 깨곤 친구가 나를 다급히 깨웠다. 뒤를 보니 경찰관이 허리춤의 총을 만지며 내가 타고 있는 차 쪽으로 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총이구나 싶어(여행 중 본 첫 총은 볼리비아였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에) 급 머리가 띵 해지던 순간, 경찰관이 와서 말을 걸었다. 그제야 미국에 오래 산 친구가 주의를 주며 해줬던 말이 생각났다. “미국에서 운전할 땐 조심해야 해. 아무도 없을 것 같은 드넓은 시골길 어딘 가에서도 경찰은 늘 나타나거든, 귀신처럼” 바로 그 상황을 내가 맞닥뜨리게 될 줄이야.
경찰이 온 이유는 단 하나. 차에 번호판이 없다는 것이었다. 알라모 렌터카 회사에서는 한국의 여행작가가 방문했다고 특별 대우(!)를 해준다며 출고된 지 3일 된 새 차를 주셨고 번호판이 아직 붙기 전이라 그 내용이 설명된 계약서를 함께 주신 게 있어서 그걸 보여드렸다. 경찰관 왈, 원래 번호판이 없는 차는 불법이지만 너희는 이제 여행 마무리이고 내일 한국으로 돌아간다니까 특별히 봐주겠다고. 앞으로는 주의하라고 이야기하면서 미소를 한번 지어 보이곤 바로 떠났다. 아! 이분은 또 왜 이리 잘 생기신 거란 말이냐. 영화배우 출신인가? 속으로 궁금해했지만 그 와중에 차마 물어볼 순 없었고, 질문을 좀 더 해 주길 바랐지만 나의 마음을 전혀 몰랐을 그분과는 아쉽게도 그렇게 끝이 났다.
당시에는 허둥지둥 당황하고 긴장하며 만났던 해외의 경찰관들! 평소에 자주 볼 일이 없었기에 더욱 긴장이 된 것일 수도 있지만, 지금은 이렇게 재미있는 추억이라고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가끔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여행이 너무 순탄하게, 계획대로 끝나면 재미가 없는데… 내가 돌아가서 풀 썰(?)이 없는데…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