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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정 Jan 24. 2022

여행과 날씨의 상관관계가 주는 즐거움에 대하여

오랜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날씨에 따라 내 여행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 날씨는 ‘사람’의 힘으로 조절이 안되니 마음을 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는데 사실 여행 초반엔 그 조절이 잘 되지 않았다. 물론 내 과한 욕심 때문이었다.


몇 년 전 포르투갈 여행을 다녀왔다. 직항이 없었던 탓에 갈아타는 구간과 연결 편 현지 항공까지 열심히 공부해 알아본 후 일사천리로 예약을 하며 하루하루 떠날 그날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에서나 보던 포르투갈의 트램과 아줄레주(도자기 타일)는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내 감성을 충분히 자극했다. 좋아하는 친구와 어렵게 시간 맞춰 함께 떠나는 여행인지라 더욱 설레었다. 산 넘고 물 건너 비행기 경유까지 한 끝에 도착한 리스본. 이럴 수가! 포르텔라 국제공항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래, 나는 늘 여행운이 끝내줬으니 곧 이 비도 그칠 거야, 이 정도 비쯤은 포르투갈이 내게 하는 환영인사라 쳐 두자”라고 호기롭게 외치곤 예약해둔 호텔로 찾아갔다. 여전히 주룩주룩 내리던 비. 자꾸만 어깨가 처지고 기분이 다운되었다. 그렇게 장장 열흘 기간의 기간 동안 매일 비가 왔다, 거짓말처럼. 우산을 2개씩이나 버려가며 여행해보긴 처음이었다. 


동남아의 경우 우기의 여부에 따라 여행의 질과 느낌, 사진 속 바다색이 더욱 완연히 달라진다. 특히 바닷가는 비치는 해의 색에 따라 바다 빛깔이 보이기 때문에 같은 바다라 할지라도 시시각각 보이는 순간마다 다르게 느껴진다. 이러한 이유로 우기에 여행경비는 많이 저렴해진다. 여행의 최우선이 ‘돈’이라면 이럴 땐 우기를 선택하고, 뜨거운 햇볕이라 할지라도 쨍쨍한 에메랄드 빛 해변을 보고 싶다면 비싸고 사람이 많더라도 건기에 가는 것이 맞다. 보라카이를 우기에 여행한 적이 있다.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릎 밑까지 차오른 길가의 물길을 슬리퍼만 신은 채 휘휘 저어가며 깔깔대며 한참을 걸었던 기억. 어쩜 비 덕분에 더 많이 웃고 즐거웠던 여행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다녀온 군산의 고군산군도 여행에서는 폭우를 만났다. 코앞 시야가 거의 분간되지 않을 정도의 장대비를 만난 건 참 오랜만이었다. 나는 분명 장자도 대장봉에 올라 바다를 내려다볼 생각에 한껏 기대감이 부풀었지만 역시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바람일 뿐이었다. 고민 끝에 빗길을 뚫고 정상까지 올라가 보니 안개가 자욱한 대장봉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기대했던 쨍한 파란 하늘과 바다는 담을 수 없었지만, 운치 가득한 바닷길을 내 마음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던 건 예상치 못한 수확이었다. 출장으로 떠난 여행이었는데 결과물이 성에 차지 않아 회사에 양해를 구한 후 현지에서 추가로 1박을 연장했으니 이 또한 기대치 못했던 재미라고 할 수도 있을 듯하다. 


종종 맞닥뜨리는 ‘비와 함께하는’ 여행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현실은 받아들여야 하니까. 이럴 때면 아무렇지 않았던 여행 속 일상이 조금은 달라지곤 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창 밖의 날씨를 확인하는 것이 하루 중 가장 성스러운 일과가 되었고, 매일 주르르 내리는 비 속에서 잠시나마 해가 반짝이면 미친 듯 뛰쳐나가 바로 카메라를 꺼내 들곤 무엇이든 촬영을 하기도 했다. 종종 감질나게 해를 만날 때면 그 간절함과 절실함이 더욱 커졌던 것 같다. 그리고 당연하게 여겨졌던 평범한 여행 속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여행 중 사람 힘으로 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 ‘날씨’라고 믿고 보니 그 어떤 날씨가 주어지든 겸허히 받아들이게 되었고, 날이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그 자체를 즐기기 시작하니 여행이 훨씬 더 행복해졌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그리고 내게 주어지는 모든 것이 감사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여행 혹은 삶은 또 다른 큰 의미를 지닌다. 역시 언제나 나는 여행 속에서 인생을 깨닫고 배워간다. 중요한 건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럴 것이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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