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내게 준 기회가 있다면(‘기회’라고 쳐두자), 국내여행 들여다보기? 국내여행 재발견? 이 아닌가 싶다. 어렸을 적 내 가치관으로는, 여행은 체력 좋을 때 멀리 가자는 주의였다. 그래서 책을 출간하고 인터뷰를 할 때면 늘 댓글에 욕이 달리곤 했었다. “넌 좋겠다~ 돈 많아서 해외만 가냐?” “국내나 똑바로 돌아라” 등. 겉으로 보이는 말 몇 마디로 많은 욕을 먹어서 억울하기도 했었다.
그 후 ‘코로나’라는 대변수가 내 인생에 끼어들어왔고 나는 참을 수 없는 역마살을 유지하기 위해 국내여행을 시작했다. 물론 지식이 없었으니 내게는 모든 여행이 공부였다. 문경의 오미자 와이너리를 갔다가 해외 여느 나라 못지않게 우수한 품질의 우리나라 와인이 생산되고, 이 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과 관계자분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고, 화려한 여수의 밤바다 야경에 놀랐으며, 통영의 욕지도에서 모노레일을 타며 아름다운 우리나라 남해 바다를 내려다볼 땐 너무 신이 나 마구 소리를 질렀던 기억도 난다.
그런 내가 최근 반한 곳은 경기도 파주이다. 서울에서 일산을 지나면 나오는 곳이면서 북한과도 인접해 있어 전망대도 있는 그곳. 사실 마음먹고 1박 2일 코스로 여행을 해본 건 처음이라 이 정도로 볼거리, 먹거리가 다양할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대반전이 있었던 파주는 내게 기대 이상의 큰 즐거움을 주었다. 함께 동행했던, 일산 토박이 친구조차 놀라워하던 그곳들을 소개해 드릴까 한다.
첫 번째로 기억에 남는 곳은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출판사 ‘열린책들’이 오너인 이곳은 파주 출판도시 내에 자리하고 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예술>이라는 콘셉트로 책과 예술을 잇는 특화된 내용을 소개하는 콘셉트의 미술관이다. 2010년 말 개관해 11년째 운영 중인데 현재는 러시아 문학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기획전이 전시 중이다. 그의 전집을 재 출간한 것은 물론, 신예 화가와의 콜라보를 통해 표지를 모두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그의 일대기를 자연스럽게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가장 놀라웠던 건 건축물!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거장>이자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건축가 알바루 시자(Albaro Siza)가 설계했는데 곡선과 화이트, 빛으로만 이루어진 이국적이고도 세련된 건물이 시선을 끌었다. 미술관 카페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둘러보니 책꽂이에 가득한 책들과 저 멀리 보이는 미술 전시품, 그리고 통유리창으로 내다보이던 정원 뷰가 일품이었다. 다른 계절에 꼭 다시 오겠다며 굳은 결심!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곳은 카페 루버월. 2016년 한국 건축가협회상, 2017년 미국 건축상 수상 외에도 국내외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이미 소개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내비게이션 속 주소를 따라 찾아가는데 자꾸만 조용한 주택가가 나와서 놀랐으나 그 골목 끝에 거짓말처럼 ‘짠’ 하고 나타나 자리하고 있던 곳이다. 건물은 총 3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1.5층까지는 카페, 2&3층은 부부가 사는 주거공간으로 사용 중이었다. 바깥에서 보면 건물 자체는 마치 사무실에서 쓰는 파일 폴더처럼 촘촘한 빗살무늬가 인상적인데 ‘루버(폭이 좁은 판을 비스듬히 일정 간격을 두고 수평으로 배열한 것)를 통해 채광이 자연스럽게 내부를 비치는 그런 구조이다. 내부는 층고가 높아 소리가 울리는데 음향 시설 또한 좋아 모처럼 공연장의 느낌으로 공간을 즐길 수 있어 색다른 느낌이었고 콘크리트와 유리, 그리고 원목으로 구성된 내부는 마치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가 생각날 만큼 매력적이었다.
직접 원두를 로스팅하신다는 주인장님의 커피 맛은 카페만큼이나 훌륭했다. 이렇게 멋진 공간을 만든 이유와 계기가 궁금해 이것저것 질문을 드렸더니 조곤조곤 친절하게 답변해 주셔서 더욱 기분 좋게 이용할 수 있었던 곳. 가져갔던 책 한 권을 다 읽고서야 기분 좋게 나올 수 있어서 더욱 뿌듯하던 곳. 파주에 사시는 분들이 급 부러워진 건 오로지 이 카페 덕분이었다고 하면 너무 오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