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 trekking: 목적지가 없는 도보여행 또는 산. 들과 바람 따라 떠나는 사색여행”
사전을 뒤적여보니 트레킹이란 뜻이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여행을 오래 하며 살았지만 주로 해외의 도시탐험을 좋아했다. 특히 산을 싫어했는데 누가 산이라도 가자 하면 나는 “산은 케이블카 있는 곳만 가는 거 아니야?”라는 말로 응수하곤 했다.
세상에 장담할 일은 없는 것인가? 이러던 내가 요즘 트레킹 코스로 여행을 한 지 2개월이 되었다. 등산 브랜드 장비를 논하고 코스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도무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라 치부했고, 나와는 섞일 수 없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제껏 살아왔는데, 반전도 이런 반전이 있을 수가 없다. 역시 이래서 내가 종종 하는 말이 다시 한번 떠올려진다.
“여행도, 인생도 예측불허”
사실 어찌 보면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일 수도. 뻔한 예상과 결말이라면 어느 누가 열심히 모험과 도전을 하면서 살겠냐며, 스스로 위안 중. ^^;;
국내 트레킹 전문 여행 ‘SW여행사’와 인연이 되어 그 상품으로 움직였다. 코시국인만큼 1인당 2개씩의 단체버스 좌석이 제공되고 있고, 고속버스를 타고 현지에 도착하면 점심식사로 이어진다. 그리고 바로 몇 시간의 걷기로 여정은 대부분 마무리된다. 다행히 코스를 상중하로 나누어 나 같은 초보가 선택하기 쉽게 상품을 운영 중이다.
인제 자작나무 숲은, 마치 동화 속 설경을 보는 것 같았다. 늘 사진으로만 보던 그 풍경을 내 눈으로 보니 훨씬 더 로맨틱하고 우아했다. 경북 울진이란 곳도 태어나 처음이었는데 그토록 멋진 바다와 통고산 자연휴양림도 신선했고, 계곡을 끼고 있는 데다가 그 산에서 내려오는 온천물이 끝내주던 덕구온천과 덕구리조트는 기대 이상이었다. 태안의 바닷길은 바다와 소나무숲길을 동시에 보며 걸을 수 있어 지루할 틈이 없었던 것도 큰 행복이었다.
투어 때마다 나오시는 인솔자는, 초보자인 내 눈엔 적어도 ‘사람’으로 안보였다. 마치 축지법을 쓰면서 산 위를 날아다니는 도사(?)쯤으로 보였다고나 할까? 트레킹 코스의 선두 그룹을 지휘했다가, 어느새 뒤돌아보면 나처럼 뒤쪽에서 처지는 사람들을 챙기면서 전체 여정과 고객들을 오가는 리더의 역할을 완벽히 해내는 분들이었다. 진심 존경!!
내게 가장 힘들었던 코스는 치악산 곧은치재 구간이었다. 분명 내가 상품을 고를 당시엔 초보자도 가능한 코스라는 표시가 있었고, 치악산이지만 얕은 둘레길 같은 곳을 걷나 보다 생각하곤, 말로만 듣던 치악산에 발 한번 디뎌볼까 하는 지극히 심플한 생각만을 한 채 떠났다가, 하마터면 산 위에 그대로 주저앉아 대성통곡하며 울 뻔했다. 한참 이어지던 오르막 길에선 함께 걷던 분들과 으쌰 으쌰 하며 간식도 나누어 먹으면서 참을 만했다. 문제는 내리막길. 그날 등산화를 신어본 것도 처음이었는데 워낙 내가 못 내려가고 있으니 옆의 친구가 스틱을 한쪽 내주었다. 그걸 처음 써보면서 발을 내딛는데 도무지 어디를 짚어야 할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우왕좌왕, 다리는 이미 힘이 풀려 앞으로 곧 꺾일 것 같은 상태가 되었고, 온몸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꼴찌로 그 길을 내려오고 있었고, 가이드님의 도움을 받곤 겨우겨우 땅 밑으로 하산. “내가 여길 왜 왔을까? 다시는 이제 이 회사의 상품으로 여행 오지 말아야겠다. 내 수준이 너무 낮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네”를 울부짖으며, 겨우겨우 마음을 진정시켰다.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니 좀 전까지 눈물 콧물 빼던 나는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밥에 집중했다. 더덕구이와 파전은 어쩜 그리 맛있던지! 역시 강원도의 힘! 하마터면 두 그릇 먹을 뻔!!
트레킹 여행을 한 번 다녀오고 나면 보통 이틀 정도는 앓아눕는다. 온몸에 힘이 없고 집중이 안 되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3일 차가 되면 몸을 일으키자마자 다시 SW여행사의 홈페이지를 기웃거리며 다음 트레킹 여행으로 어디를 떠나볼까 기웃기웃 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내게는 상당히 놀랍고도 믿어지지 않는 큰 변화라 나도 신기한데 내 주위 분들이야 나의 이런 마음을 믿어줄 리가 없지. 여기여기를 그사이 다녀왔다고 하면 단 한 명도 곧이곧대로 믿지를 않고 되묻는다. 네가 정말 다녀온 것 맞냐고!
이상하게도 이렇게 중독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매일 아침이면 내 스케줄 중 최우선으로 이를 배정하면서 언제 어떤 코스로 또 걸어볼까 행복한 궁리를 한다. 놀랍게도 기대했던 다이어트는 아직 전혀 효과는 없는 듯하나 내 몸의 셀룰라이트들은 나와 너무 오랜 시간 정이 들어서 안 떨어져 나가나 보다 하며 마인드 컨트롤 중이다. 하지만 진심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걸을 때만큼은 잡생각을 떨쳐낼 수 있어 몹시 마음이 행복해지는 이 느낌.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고 싶다. 이러다 언젠가 변덕이 생겨, “나 트레킹 때려치웠어요”라고 여기에 다시 쓸지는 모르겠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