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팔이오 Jul 28. 2021

23일차, 잊어 줘. 아니, 잊지 마.

그날, 나의 일기장을 본 뒤

오늘 새벽에 자기 전, 남은 반절을 마저 다 읽었다. 가볍게 보기 좋고 읽는 데에 부담이 없는 책이었지만, 소재가 소재였는지 그만 눈물을 한 번 찔끔 흘리고 말았다.


사실 수진이 숨기고 있던 사실은 '심장이 멈추는 병'을 앓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잊어달라는 그녀의 말에 태준은 그날 일기를 안 적는 것으로 그녀의 비밀을 자신에게도 숨기려 했다. 그렇지만 결국, 수학여행 날 이후부터 기억을 읽지 않게 된 태준은 모든 기억을 떠올리고 마는데, 병에 대한 사실도 떠올리게 된다.


오늘 일은 잊어줘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것을 무서워하는 수진은 이 말을 태준에게 참 많이 했다. 나도 이런 말을 들은 경험이 있다. 잊어달라는 말은, 언제나 들어도 가슴 시리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잦다. 그게 연애 상담이던, 인생 이야기건, 신세 한탄이건, 모든 토로는 감정 소모로 이어지지만 어떡하겠나. 나도 힘들어 봐서 알지만, 사람은 토해낼 곳이 필요하다. 나는 자기희생적인 면모가 지독하게 강한데, 그러다보니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게 정말 내가 관심 없는 사람이어도 말이다.

언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좋아한다는 뜻이 연애적인 감정으로 말한 건 아니다.)이랑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그 사람이 힘든 게 보여서, 먼저 전화를 하자고 한 사람은 나였다. 그 사람은 남한테 자기 일을 말하는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전화하면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는데, 그 사람은 울면서 자기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 끊기 전에 잊어 달라고 했다.

소설 속의 태준도 잊어 주기를 택하고, 나도 잊어 주기로 약속을 했다. 그래서인지, 태준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다만 다른 점은 태준은 원하지 않아도 잊는 것이 가능했지만, 나는 그런 게 가능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 나는 그래서 잊는 것 대신 잊은 척을 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내가 정말로 잊었다면 이 이야기를 지금 이렇게 글로 쓰지 않았겠지.


사람은 때로 잊고 싶지 않은 것을 잊고, 잊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날 기억해줘.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을 때까지. 그리고 그때, 날 다시 만나러 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