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 콘서트를 위해 한국 방문했던 2019년 11월의 이방인 일기
원래 긴장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
이상하리만치 이번 한국행을 앞두고는 조마조마한 주간을 보내었다.
식구 중 누구 하나 아프거나 다치거나,
또는 교통편이 지연되거나 연착되거나.
울며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지 않길,
시도 때도 없이
해님달님 깍지 끼고 기도하며 보냈다.
공항까지 직통으로 가는 특급열차 内에서
노래도 듣고, 짧은 메모도 했다.
혼자서 기차를 타니, 시공간을 뛰어넘어 혼자 오래 여행했던 유럽 어디쯤 그날의 아침 여덟 시에 앉은 느낌.
모든 것이 정시 출발, 시간 내 도착이었다. 순조로웠다. 뭔 일이 있어도 밥은 먹는 나인데, 이 날은 어쩌다 보니 제로끼. 공항철도를 기다리며 들어간, 낯선 물건들로 가득 찬 편의점에서 내가 아는 바나나 우유를 집었다. 900원일 때 서울서 살았는데, 지금은 1,400원.
세월에 어퍼 컵 맞는 느낌이라니.
홍대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을지로 입구역에서 내렸다. 호텔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 앞으로 꺾어가니, 나의 여동생과 조카가 보인다. 테디베어 같은 촉감의 외투를 걸치고선, 내 이름을 부르며 폭 안기는 세 살 배기. 이름만 이모지 낯설기 그지없을 텐데, 이모 고모라는 호칭은 세 살 아이도 용기 내보게하는 막강 파워 단어인가 보다.
백화점 지하 푸드코트에서 첫 식사. 희망 밥상 리스트가 있었다만, 또 짜장면 타령이냐는 여동생의 핀잔을 겸허히 받아들여 bossam.
식사가 준비되면 핸드폰으로 알림이 오는 현대 세상.
난 오지에서 살다 왔단감?
이야기 꽃길을 걷다 보니 세종문화회관까지 같이 오게 되었다. 동생 없었음 못찍었을 기념 be샷.
공연 시작 15분 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비우고 입장하지 않으면, 의식의 반대편으로 날아갈 수도 있다는 인터미션 제로의 2시간 30분간 공연.
1부
그림자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Nobody
편지
오래된 노래
고백
여름의 끝자락 with 피아니스트 김정원
청원 with 피아니스트 김정원
배려
연극
김정원의
멘델스존 무언가
Chopin Nocturne No.20 in C Sharp Minor
R.Schumann Widmung, OP.25-1
2부
아이처럼
출발
Train
사랑한다 말해도
농담
취중진담
잔향
고독한 향해
앙코르
동반자
잔향 Finale
다음 공연부터는 티켓 가격을 상향 조정해주었으면 좋겠다. 얼마를 치르더라도 갈 팬을 위해.
단지 티켓 구입 시 타이밍으로 좌석이 결정 나지 않게.
그가 지은 멜로디의 값어치를 자리값으로 매길 수 없다는 나 같은 이들을 위하여
호텔까지 걸어 돌아가는 길.
그래도 안 변한 게 있으면 친구처럼 반가웠다.
11월의 끝 밤이 왜인지 춥지 않았다.
여름에도 후지산 등반으로 하룻밤 집을 비운 일이 있는데, 그땐 괜찮았던 둘째가 오늘은 눈을 질끈 감고 흐느끼며 서러운 울음을 쏟는다.
내 가방과 내 사진을 들고
컴컴한 방에 들어가 한참을 울었는데, 조금 진정되던 찰나에 내가 영상통화를 걸었다고.
당분간 1박 나들이는 꿈도 안 꿔야겠다.
새벽에 눈이 뜨여 명동까지 걸어가 테이크 아웃해 온 설렁탕. 물론 난 1인용 자리로 안내받아 이미 한 뚝배기 먹고 왔다. 테디베어가 이모폰으로 찍은 사진도 마냥 다 귀엽고 소중하다.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 교보문고에 들리기로 했다.
얼마 만에 여길 온 걸까
지난 세월이 영화처럼 흘러지나고
그 어디선가 낯익은 향기
어느샌가 그 시절 그곳으로
김동률의 귀향 중
내 나라 떠나왔는데
나에겐 이 땅이 귀국이라네
률망진창 률릿고개를 버티기 위해
어제 인쇄한 천재 작곡가의 악보
그곳에서도
이곳에서도
이방인인 나의 일기
오래된 노래를 불렀던
그날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