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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ke Nov 22. 2021

후지산에서의 하루

이방인이 오른 세계문화유산


오렌지 빛의 아주 크고 밝은 달이었다. 산장에서 여름 두 달간 반짝 돈 버는 스태프들도 감탄하며 보라한 달이니, 분명 여느 날보다 몇 배는 예쁜 달이었으리라.





쏟아지는 별들도 찍어 보았지만, 전혀 사진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눈에 들어온 별들은 가슴에 담았다.


 방은 저녁 8시 10분경에 소등되었고,

그렇잖아도 옅은 산소농도가, 밀집한 인원으로 더 떨어지니, 기분이 이상한 사람은 침실에 남아있을게 아니라 거실 및 산장 밖으로 나가라고 안내해주었다. 해서 오랫동안 못 자고 서성거렸다. 구토를 하고 나니 살 것 같아, 다시 침낭 속으로 들어갔지만 재차 힘들어졌다. 자기 주문을 걸며 심호흡을 하던 중( 다들 자니 크게도 못하고 입 막고 심호흡) 어느샌가 선잠이 들었다.

 칠흑 같은 12시, 주변이 부스럭거려 잠이 깨었다. 더 나빠지진 않은 듯 해 기뻤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산소농도는 더 떨어지겠지만, 산장 내에 있는 것보단 나을 것도 같았다. 가이드는 일일이 컨디션을 물어보러 다녔고, 출석부 마지막 번호였던 내가 정상에 가겠다고 답함으로써 그룹 전원 탈락자 한 명 없이 등반을 하게 되었다. 사실 나 말고 구토를 하는 이 가 두어 명 더 있었고, 쉬이 잠 못 드는 사람도 서너 명에, 이미 쓰러져있던 초등학생 여자애도 보았으니 고산병은 너무나 누구나 쉬이 걸리는 것이었다.

 가이드도 그랬다. 열명 중 한 명꼴로 등반을 포기해야 하는 고산병에 걸린다고.

 채비를 끝내고 산장을 나서는 시간.

이름 모를 수많은 별들이 하늘을.

줄지어 오르는 헤드랜턴의 불빛들이 지상을 수놓았다.



 8고메에서도 가장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한 산장이었기에, 금방 본 8 고메에 달했다. 여기저기 산장에서 봇물 터지듯 나온 인파들과 저녁부터 오르기 시작한 탄환 산행자들까지 가세해 등반로는 인산인해였다.

 한걸음 전진 후 2.5초 멈추기. 이 패턴으로 3시간을 올랐다. 멈춘 발걸음은 위태위태한 바위를 밟고, 숨은 아무리 폐포의 말단까지 들여 쉬어도 헐떡거림을 없앨 수 없었다. 그렇게 후지산 정상에는 새벽 4시 정각에 도착했다. 그 사이에 한번 더 구토를 했다.




 금세라도 해가 솟아오를 듯이 지평선을 가른 선에서 오렌지 빛이 멀겋게 밝아져 있었지만 , 고라이코 예상 시간은 4시 35분에서 50분 사이라 했다. 이때가 가장 기온이 떨어지고, 강풍이 부는 시간대이다. 방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오른 등산객들은 여기저기 쓰러져 벌벌 떨고 있었다.

 투어로 온 등산객들은 예약되어 있는 식당에 들어가 몸을 녹일 따뜻한 국물이나, 라면, 커피 등을 주문할 수 있었다. 물 한 모금에도 구토가 올라오던 상황이라 아무것도 주문을 못했는데, 1인 1 주문이라는 관광지식당법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시간이 어서 흐르길 재촉하고 또 재촉했다.




곧이네요! 라는 가이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담하게 모습을 드러내던 태양.





 살아 돌아와야 했기에, 겐가미네봉까지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면 컨디션은 금방 제자리를 잡을 줄 알았다. 허기지고 목이 따가워, 물 한 모금 넘긴 것을 하산하며 또 게워냈다. 간식을 단단히 준비해 갔는데, 반이상을 남겨 가져왔다.

 하산로는 등산로와 달리 두 군데의 화장실이 전부였던 걸로 기억된다. 갈 일이 없었다. 먹은 것도 마신 것도 없으니 나올 것도 없었다.

 다리에 힘은 풀리지, 태양은 따갑지, 갈지자의 무한 반복 내리막길은 마치 깨지 않는 악몽의 새벽 2시 반 같은 기분이었다.




양 팔은 벌겋게 타서 다음날까지 따끔거린다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정신줄을 놓았나 보다

 해발이 2,500m 이하로 낮춰져도, 숨쉬기는 여전히 곤란했다.

그러니까 과장님이 주시는 술을 거절 못해 계속 받아 마시다, 일명 꽐라가 되었는데, 물만 마셔도 토하고 방구석에 누워있어도 세상이 돌고, 사지 말단이 얼얼한 기분이 들던 중, 부장님이 주최한 '산악회'가 다음 날 잡혀있었던 것. 전날 과음했다 한마디도 못하고, 그 컨디션으로 정상까지 끌려 올라가는 기분. 딱 그거였다.


전날 정오 12시 50분 출발하여, 익일 오전 9시 40분에 산행을 마쳤다.

산을 오르기 전에는 그랬다. 훗날 나의 아이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길.

산장에서는 달라졌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절대 이와 같은 생고생을 하지 않길. 나하나로 족하다고.

다녀오고 만 하루가 지나니 또 조금 달라진다.

역시 도전은 아름답다.

한 번은 올라볼 만하다.

그렇지만 절대 만만하게 봐선 안된다는 점.




후지산 등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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