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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ke Jan 19. 2023

워싱턴 디씨에서 조성진을 만나다

SeongJin C. plays Brahms’ Piano Concerto


 살을 찌우고 서른이 넘어 브람스곡을 연주하고 싶다 했던 조성진은 더없이 마른 체격으로, 보폭 넓고 스피디하게 걸어 나와 청중석을 향해 인사했다 ( 아직 서른 아니잖아)

 콘서트홀 도착 두어 시간 전부터 긴장되던 내 몸은, 그의 반짝이는 검은 구두가 페달을 짧게 끊어 밟을 때마다 숨도 멎었다. 긴장된 양손을 제어할 방법은 꼭 깍지를 끼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부터 끝까지 기도하는 자세로 경청했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D단조(Brahms’ Piano Concerto No. 1 in D minor, Op.15)의 전체적 인상은 회상하듯 인생의 쓴맛단맛을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서정적으로 속삭이다 격정적으로 울고, 맑은 날의 미풍 같다가 대지를 흔드는 폭풍우를 만나는 그런 표현이 반복해 나온다. 감당 안 되는 사랑 앞에 잊는 것에도 지키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했던 브람스의 곡다웠다.


다만 내셔널 교향악단의 소리가 처음부터 입자 고운 밀가루 같이 들려서 불안했는데 ( 알갱이의 질감이 꺼끌 하게 남아있는 믹스쳐의 오케스트라를 선호한다)

조성진의 피아노 소리마저도 얇은 막을 덮은 듯 전해져서  아쉬웠다. 음향에 세심하지 못한 케네디센터여!

 이걸 더 확실히 체감한 게 인터미션 이후 피아노가 빠지고 단원들의 자리를 끌어모아 재배치한 뒤 슈만의 곡을 연주하는데 이땐 또 오케스트라가 물 만난 생선처럼 음표 표현을 했다는 거지.


그리고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National Symphony Orchestra 측은 조성진을 귀빈처럼 대했고, 조성진도 브람스의 곡을 공손하게 대했다. 이게 빼듯이 연주를 했다라기보다 폭발하는 순간에도 정간했고 숨 죽이면서도 예의를 차리는 느낌이었달까.

 젊은 나이에 브람스곡을 연주하다 보니 거만한 느낌을 얹기 싫어 더 조심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여 조성진이 머리카락이 희끗희끗 해지고( 내가 죽기 전에 말이지) 다른 교향악단과 ( 독일이었으면 더 좋겠네) 협연을 꼭 다시 해줬으면 좋겠다!!!

  워싱턴에서 지내는 동안 조성진을 만나서 더없이 행복했던 날이었다. 2023년 대운의 징조! 이보다 값진 새해선물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울컥하던 워싱턴의 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20대 때 사두었던 (그땐 참 어려웠던) 슈만과 브람스의 앨범을 다시 꺼냈다. 지금 들으니 미치도록 좋은 것을 보니 깊이를 강요하는 두 거장의 음악이 맞나 보다. 감히 애송이들은 모를 그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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