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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므 레터 Jun 24. 2023

미신을 믿습니까?

세상에 이성으로 완벽히 설명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처음에는 친구 추천으로 홍대 앞 사주카페 갔다. 꼰대 상사 때문에 퇴사를 앵무새처럼 외치던 시기였는데, 3만 원짜리 사주풀이를 들어보니 내가 ‘상관격’이라 직장에서 하극상이라고 했다. 사사건건 따지기 좋아하는 성격이라 조직에 맞지 않는다고. 금이 많은 사주는 결실을 잘 맺기 때문에 프리랜서를 해도 어떻게든 먹고살지만 혼자 일하기엔 ‘힘’이 부족해서 조직에 붙어 있게 된다고 했다. 남자 복은 없으니 여자와 사는 게 차라리 낫다고 했다. 남자를 볼 땐 ‘수(물)’의 기운이 올라와 몸을 많이 본다고 했다. 남자를 굳이 만날 거면 ‘키링남’을 만나라고도 했다. 추천해 준 친구와 사주 후기를 나눴더니 “나한테도 여자랑 살라 그러던데!”라면서 “그 아저씨 홍대에 너무 오래 있었다” 하고 깔깔댔다. 기술을 배워두면 좋다는 건 엄마한테 인이 박히게 들은 말이고, 유재석과 사주가 비슷하다는 말은 3만원짜리 덕담처럼 느껴졌다.


내가 늘 내 사주에 신경 썼던 건 바로 ‘형살’때문이었다. 스물다섯 무렵, 친구가 앱으로 간단하게 사주를 봐주곤 했는데 그 앱에는 내 사주에 ‘형살’이 붙어 있다고 했다. 큰 사고를 당하지 않으면 아주 큰 일을 해낼 사주라는데, 그것이 내 마음속에선 어쩐지 ‘큰 사고’ 쪽으로 기우는 것이었다. 걱정을 안 하면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고, 걱정한 일은 절대 실제로 생기지 않는다는 나만의 머피의 법칙에 따라 나는 늘 큰 사고에 전전긍긍했다. 잡지에서 어시스턴트 하던 시절, 마감 때 저녁마다 모두 모여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는데 어느 선배 이야기가 나를 압도한 것이다. 지인 두 명이 신점을 보러 갔는데, 한 사람한테는 유독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라’며 덕담을 아끼지 않았단다. 얼마 뒤에 그 사람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고. 충격을 받은 채 다시 찾아간 지인에게 무당은 “그 친구는 들어올 때부터 다리가 없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화보 촬영을 위한 재료를 이것저것 사러 을지로 방산시장에 갔다가 내 기우의 실체를 마주했다. 난생처음 사고 현장을 간접체험한 것이다. 분명 2인 1조로 맨홀 뚜껑을 열고 하수도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골목에 들어서던 SUV 차량이 맨홀 안에 반쯤 들어가 있던 인부를 보지 못하고 맨홀 뚜껑을 짓밟은 것이다. 10 발자국쯤 떨어져 왔을까,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길게 들렸다. 119에 전화할까 했지만, 일행이나 사고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있을 테니 괜찮다고 애써 자위하며 택시를 타고 급히 사무실로 갔다. 이뿐이면 다행이다. 귀가하는 길에는 지하철역 출구를 나오던 중 계단에서 한 남자가 눈에서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번에는 사고현장에 환자의 일행이 있음에도 낮에 을지로에서 가장 먼저 신고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직접 신고를 했다. 다행히 일행이 이미 신고를 한 상태였다. 피를 무서워하는 나는 멀찌감치 돌아 출구를 나왔다.


다음 날 출근하려고 대문을 나섰는데 대문 앞에 나 보라는 듯이 새 한 마리가 배를 까고 누워 있었다. 내가 급하게 나왔다면 무심코 밟았을 법한, 정 중앙에. 누가 갖다 둔 건지, 그곳에서 사고를 당한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주변에 유리창도 없고, 고양이가 많은 길목도 아닌데. 온 우주가 힘을 모아 나에게 ‘조심해! 때가 다가왔어!’라고 소리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였다. 차를 탈 때마다 안전벨트를 꼭 매기 시작한 게. 지금도 종종 만성우울증 때문에 횡단보도 앞에 설 때마다 ‘달려오는 차에 몸을 던지고 싶다’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늙어죽거나 내 목숨을 내가 결정하면 했지, 때아닌 사고사를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홍대 사주카페를 다녀온 뒤 얼마 되지 않아 대학 부전공 동기를 오랜만에 만났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합리적이고 똑똑한 친구인 그는 내가 사주를 보러 다녀왔다고 하자 내가 ‘달리 보인다’고 했다. 나도 이성적인 부류라고 생각했다나. 모태 기독교였던 나는 대학에 입학한 뒤로 무신론자에 가까워졌고, 사주같은 건 당연히 그저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했다. 죽으면 그냥 한 줌의 흙이 될 뿐이라고, 어릴 적 귀신에 들려 6개월을 누워만 지냈다는 러시아 친구의 말도 흘려들었다. 절친과 영화 기다리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사주 카페에 갔을 때도 나는 옆에서 듣기만 했다.


20대 후반이 되자, 약속이나 한 듯 주변에서 사주를 보러 다닌다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사주 후기가 꼭 한 번씩 나왔다. 그때쯤 20대 페미니스트들은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홍자매’의 ‘홍승희’가 신내림을 받고 무당 ‘홍칼리’가 되었다. <보건교사 안은영>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나는 젤리가 되어 서럽게 우는 고윤정 배우를 보면서 오래전 대학 시절 수업에서 들었던 김정환 시인의 특강을 떠올렸다. “짐승은 제 목숨이 어디 붙어 있는지 알까요? 사람은 자기 목숨이 어디 붙어 있는지 아나요?” 사람의 목숨이라는 게 끊어지는 순간에 무슨 일이 발생하는 걸까? 물리학적으로 우리는 우주의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지만, 이렇게 평생 동안 깊고 다양한 감정을 겪는다면(그 감정이 화학작용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대체 우주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아마 초등학생 때부터? 인생의 의미와 허무함, ‘자아‘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에 시달렸다. 밀란 쿤데라의 ‘한 번뿐인 것은 일어나지 않은 일과 같다’라는 말을 붙들고 20대를 보냈다. 빨리 이번 생을 끝내고 되도록이면 자아가 없는 조약돌 같은 것으로 태어나 무념무상으로 살고 싶었다. 아니, 실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 좀 더 잘 살고 싶었다. 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가르치던 선생님은 이를 ‘리셋 증후군’이라 가르쳐주었다. 나만 이런 게 아니라고? 독일어도 아니고, 이런 기분을 설명하는 단어가 있다고?


잡지를 한 지 7년째, 퇴사의 기로에 서 있던 시절에 만난 인터뷰이는 말했다. 한 번뿐인 인생의 기회를 이미 놓쳐버린 것 같다고. 잊어버렸던 모든 감각들이 깨어나는 듯했다. 온몸의 세포가 들끓는 기분. “나도 그래!” 어디에서부턴가 아주 실패해버린 것 같다는 막연한 좌절감에 대해 공감하던 우리는 인터뷰가 끝나고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 장장 3시간 수다를 떨고 급격하게 절친이 되었다. 친구는 ‘마음약방’이라는 이름의 사주카페를 소개해주었다. 인생의 기점이라고 생각했던 때라 바로 예약을 했다. 마음약방의 명리학 선생님은 내가 평생 남자 복이 없을 거라고 했고, 나는 지금 남자친구와 함께 잘 살고 있다. 일을 그만두고 유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은 일을 시작함과 동시에 늘 했었는데, 나보고 무조건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아직까지 대학원은 꿈도 꾸지 못할 경제적 상황에 시달리고 있다. 연예인 사주가 100%라고는 하는데, 연예인이 되기까지의 험한 과정을 겪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하셨다. 기억에 남는 건 이것뿐이다. 그리고 내가 조금 울었다는 것. 지난달에 또다시 유명하다는 사주 카페에 다녀왔다. 가장 고민이 되는 질문을 마지막에’ 던졌다. “저는 언제 정신적으로 건강해지나요?” “마음공부를 해야 해. 명상이나 요가 같은 거 하면 좋아.” 마치, ‘당뇨는 언제 완치되나요?’라는 환자의 질문에 ‘규칙적으로 식사 시간을 조절하시고, 소식하세요’ 같은 의사의 답변이었다. 아, 내 팔자야.


하지만 최근에 만난 그 선생님은 내가 30대 후반에는 내가 직접 셀렉하거나 만든 물건을 팔 팔자라고 했다. 사업운이 있다는 얘기를 난생처음 들었다. 이제 막 ‘솔티’라는 이름으로 내 빈티지 사업을 시작한 참이었다. 처음 인스타 라이브 방송을 했을 땐 매출이 0이었는데, 두 번째 라이브 방송을 하니 끝까지 봐주는 사람도 두세 명 생겼고 8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플리마켓에서 60만 원 벌었을 때보다 기분이 훨씬 좋았다. 처음 생각했다. 사주팔자라는 거, 바뀌는구나.


오랫동안 스스로 팔자 꼬이는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해 왔다. 덕분에 팔자가 많이 세졌다고 생각도 한다. 어릴 땐 ‘팔자 세다’는 말을 이해 못 했는데, 29세에 40대 언니들이 ‘30대가 훨씬 좋아, 무슨 소리야’ 하는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오히려 편하다. 내 꼬인 팔자를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무당이 없어도, 앞으로의 팔자를 귀띔이나마 해주는 사람 없어도 당장은 괜찮다. 여전히 ‘내가 몇 살에 죽나요?’ 같은 질문은 삼키고 있지만, 무서워서 신점은 보러 못 가겠지만, ‘신기가 있다’는 공통적 풀이는 믿기로 했다. 내 느낌을 믿기로 했다. 내가 아닌 거면 아닌 거다. 내가 느낌이 좋은 사람은 좋은 거다. 한국 나이로 30살이 되던 2020년 12월 31일 밤에, 뒷북처럼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를 보면서 생각했다. 조금 더 막살자. 옘병, 나 꼴리는 대로 살자. 오늘도 날짜를 헤아려 별자리 운세를 검색한다. 내가 읽고 싶은 것만 읽고 믿고 싶은 것만 믿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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