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단어에 모순된 정치적 함의가 담긴 단어로 명분(名分)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명분은 사전적으로 ‘이름과 신분’을 뜻하는 용어로, 조선시대 송사에서 양반과 상민의 신분적 권리와 의무를 차등화하는 법률의 기본 원리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유교적 윤리와 도덕을 통치의 근간으로 하는 조선 사회에서 양반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명분이 적은 상민에 비해 '권리는 많고 의무는 적은' 신분으로 대우받았는데, 이러한 신분의 사회적 우위는 송사에서 법률적으로도 보장되었다. 당시 명분이 낮은 상민이 자신보다 명분이 높은 양반에게 송사를 제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 사회 안정을 해치는 죄악이자 불손한 행위로 여겨졌을 뿐 아니라 명분이 낮은 사람은 명분이 높은 사람의 법률적 침해 행위를 최대한 참고 견디며 송사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 사회의 지배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에 이들은 법률적으로도 유리한 판결을 받기가 어려웠다. 이 점에서 명분은 요컨대 자연의 이치를 명목으로 사회적 불만을 미연에 봉합하는 공고한 신분 질서의 문화적, 법률적 기초로 작용했다. 그러나 공고한 위계적 신분 질서의 자연적 기초로 기능했던 명분은 상대적으로 ‘권리는 적고 의무는 많았던’ 이들이 자신들의 열악한 처지를 영속화하는 명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내세운 대의를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자신들에게 사회적, 법률적으로 강요된 신분적 몫으로서 명분을 벗어나는 일이 그들의 명분 자체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자기를 넘어서는 것으로서의 자기 규정. 이들에게 명분은 주어진 존재론적 현실에 대한 명확한 자각에서 출발해, 그것을 넘어서는 존재론적 미래를 실현하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었다.
이처럼 보수적이고 진보적인 뜻을 함께 담고 있는 명분이라는 개념에서 나는 나를 넘어서는 모든 것은 나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는 다소 엉뚱한 진리를 환기한다. 형용 모순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영역 바깥으로 나를 이동시키는 일은 여기에 현재 서 있는 나에 대한 진실된 자각과 인정에 기반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거할 나의 바깥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내가 내 안에 품고 있는 어떤 것에 의해 매개되지 않고서는 진정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재료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명분에 대한 명확한 자각과 인정이 그 명분을 넘어서는 새로운 명분에 대한 상상을 가능하게 한 것처럼, 현재의 한계를 넘어서는 진정한 도약을 위한 우리의 모든 활동은 우리가 살아가며 실제로 느끼고 생각하는 바에서 영감을 얻어야 한다. 지금의 세상을 나누는 엄연한 장르도 과거의 누군가에 의해 창조된 것이고, 지금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 재창조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창조를 위해 ‘내가 얼마나 나에게 진실된가’를 되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