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미즈 이쿠타로의 『논문 잘 쓰는 법』을 읽고 나서, 내가 왜 그림보다 글을 더 좋아했는지, 미술관에 가더라도 작품 자체보다는 작품의 제목이나 작품에 관한 설명, 작가의 생애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는지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유는 “공간적으로 병존하는 사물”을 “일거에 직접적으로” 포착해 내는 그림의 본질적인 성격에 있었다.
그림은 작가가 한 눈에 포착한 사물을 캔버스지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관찰자는 그림을 통해 그려진 사물들 간의 관계, 그려진 사물과 그 사물 외부의 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 반면에 글은 작가가 공간적 병존 상태에 있는 사물을 ”한 글자 한 글자, 단어 하나하나, 구 하나하나를 순서에 입각해 써 가는” 작업이다. 따라서 관찰자는 글을 통해 사물들의 내적, 외적 관계를 시간적 계기를 쫓아가며 논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가령 우리가 테이블 위에 주전자와 컵이 놓인 어떤 그림을 본다고 해보자. 우리는 이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는 그림의 진짜 의도를 파악할 수 없다. 우리는 이 그림이 이틀 전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이 사망 직전에 사용하던 집기들을 딸이 차마 치우지 못하는 순간을 스스로 포착해 그린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비로소 이 그림의 의미 세계에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작품의 의미 세계를 담고 있는 사물의 내적, 외적 관계는 언어와 논리로 구성된 설명을 통해서만, 그림의 의도가 향수자에게 온전히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에는 이러한 언어와 논리가 없다. 그렇기에 허용되는 사유의 제약도 없다. 말 그대로 그림은 “로고스(언어와 논리)와 손을 뗀“ 표현 매체다. 내가 표현 매체로서 그림과 거리감을 느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그림 자체를 통해서 로고스와 연결될 수 없었기 때문이고, 이해의 부담을 작가 대신 부당하게 상상력으로 떠안아야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