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대화편 『크리톤』의 작중 인물 크리톤은 사형 집행을 앞둔 친구 소크라테스에게 탈옥 후 테살리아로 망명할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지금 자신이 “가장 중히 여겨야 할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이라며 크리톤의 제안을 거부한다. 당시 아테네에서는 사형 선고를 받은 피고가 해외로 망명한 뒤 아테네로 복귀해 정치적으로 복권되는 일이 그리 드물지 않았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를 향한 크리톤의 제안은 당대 아테네 여론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렇기에 소크라테스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크게 비난을 받을 일도 없었다. 오히려 아테네에서는 사형수의 불법적인 해외 망명에 대비해 사형 선고 전 피고에게 국외 추방을 자발적으로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사형 선고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에게는 “잘 사는 것”이라며, 그것이 “원칙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가 지켜야 한다고 말한 ‘원칙’이란 무엇이었을까? 그에게 원칙은 그가 조국 아테네와 맺은 법률적 약속을 의미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주장이 얼마나 ‘정당한’가와는 무관하게, 아테네의 법정이 선고한 사형이 ‘합법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선고받기 전 자신에게 가해진 법률적 고발에 대응할 수 있는 두 가지 합법적인 선택지를 아테네 법정으로부터 제공받은 바 있었다. 그것은 첫째로 법정에서 자신을 변론함으로써 아테네 시민들을 설득하는 것이었고, 둘째로 국외 추방 선고를 법정에 공식적으로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이 합법적인 선택지들 가운데 전자에는 실패했고(『소크라테스의 변론』), 후자는 의식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그런 소크라테스에게 남은 유일한 합법적인 선택지는 사형 선고를 받아들이는 일이었고, 이에 소크라테스는 합법적으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잘 삶”이라는 자신의 원칙을 실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왜 소크라테스는 사형과 마찬가지로 합법적인 국외 추방을 사형 선고 전에 요청하지 않았을까? 이는 그가 그 안에서 살아가기로 동의한 조국 아테네와의 관습적 약속을 어기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의인화된 법률과 시민 공동체가 충고한 것처럼 소크라테스가 아테네를 벗어남으로써 조국과 맺은 원초적인 합의를 어기게 된다면, 그는 아테네만큼이나 훌륭한 법질서를 지닌 테베나 메가라에 가더라도 그곳 사람들에 의해 정체(politeia)에 적대적인 사람으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조국과의 법률적 약속을 지키는 것을 자신의 원칙으로 삼았던 소크라테스 자신의 정체성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이곳에서 그는 자신을 적대하는 새로운 사람들과 상호 신뢰에 기반한 정당한 관습적 약속조차 맺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소크라테스는 탈옥과 망명을 권유하는 크리톤에게 아테네로부터 벗어나는 생존 행위 자체를 해방이 아닌 ‘도망’이라고 표현했다. 그에게 해방은 조국과 맺은 법률적, 관습적 약속의 복잡한 망 자체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행위가 아니라, 어떻게든 그 망 안에 머물며 사람들과 분투하는 과정에서 얻어내는 자연적인 행위의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에게 개인의 양심은 오직 그 양심이 머무는 공동체와의 합의 안에서만 구현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