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와 E.H. 카

by einrosenbaum

한국방송통신대학교 2학년 2학기 교과목 《인물로 본 근대》에 수록된 마키아벨리와 E.H. 카를 공부하면서, 이 두 역사적 인물을 ‘근대적 인문주의자’라는 공통의 키워드로 해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활동 시기가 수백 년 이상 떨어진 인물들을 동일한 역사적 개념 범주로 묶어 보는 것은 시대착오의 문제로 금기시되기 마련이나, 《인물로 본 근대》는 이 두 인물을 ‘근대’라는 단일한 주제 아래 엮고 있어 인물 간 교차 독서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교과목은 독자들의 독자적인 독해를 허용하며, 교과목의 편성 범위 안에서 시대착오적인 접근 방식은 삼가야 할 악덕이 아니라 파편화된 근대라는 주제에 보다 총체적이고 독창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돕는 미덕이 될 수 있다. 독자들은 이 미덕을 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이들이 왜 근대를 비추는 거울로 평가받을 수 있는지 나름의 이해와 판단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입각점에서 마키아벨리와 카의 사상을 비교해 보면, 이 둘이 상기된 키워드로 접점을 이루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널리 알려져 있듯, 마키아벨리는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운명(포르투나)을 달래거나 지배하는 인간의 의식적인 행위 능력으로서 덕성(비르투)이 갖는 공훈을 역설했던 사람이다. 반면 카는 삶에 예측성을 부여하는 세계의 내적인 법칙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 그러한 법칙을 새롭게 창조하는 인간 이성의 활용 깊이와 폭을 진보의 척도로 간주했던 사람이다. 이들은 모두 인간 존재를 자신의 이성을 활용해 자신을 통제하는 모종의 거대한 힘과 대결함으로써 개인과 사회를 개조하고 개혁하는 적극적인 행위 주체로 보았다는 점에서 자연주의자 혹은 섭리주의자와 대비되는 인문주의자(humanist)라 불릴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인간이 격변하는 주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도덕적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들의 주장은 끊임없는 변화의 가능성을 정상 상태로 보는 코젤렉적인 의미의 ‘근대성’을 드러낸다. 이처럼 열린 결말을 긍정하는 인간 이성의 사회적 상상력을 옹호했다는 점에서 이들을 ‘근대적 인문주의자’로 평가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와 카가 각기 고대 로마 공화정과 소비에트 체제를 당대의 국가가 본으로 삼아야 할 정치 체제의 모델로 꼽았던 이유도 바로 그들의 이러한 기본 관점과 맥이 닿아 있다. 이들은 상기된 체제의 인간들이 각기 ‘운명’과 ‘역사의 종말’이라는, 언뜻 보기에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힘에 맞서 삶의 경로를 적극적으로 개척해 가는 모습에서 역사의 지속 또는 진전의 가능성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역사의 지속과 진전을 위해 인간의 이성이 (긍정적인 의미에서) 두어야 할 특별한 한계란 없다는 것—그리고 없어야 한다는 것—을 역사와 당대의 현실을 통해 깨달았다.


이들은 자신들이 깨달은 바를 공적인 참여자가 아닌 사적인 관찰자로서 본격적으로 이론화하기 시작했다. 마키아벨리는 1512년 재집권한 메디치 가문의 피렌체 정부에서 해임되고 산탄드레아 농장에 칩거하며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를 썼고, 카는 1946년 애버리스트위스 대학에서 불명예 퇴임한 이후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 집필에 몰두했다. 이 시기에 이들은 자신들이 적극적으로 관여해 온 공적인 세계에서 사실상 추방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추방의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에 적응하고 이내 저항함으로써 자신들이 공적인 영역에 공표해 왔던 사상을 일상의 영역에서 몸소 실천했다. 비토 콜레오네가 그랬듯, 이들은 삶에서 자신들이 만들 수 있다고 믿은 미래를 위해 라지오네(Ragione)를 결코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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