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지옥 사이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제목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한 전투 뒤에 또 다른 전투”, 영화의 주제와 문제의식에서 번역하면 “계속되는 투쟁”이 될 것이다. 영화 속 모든 등장 인물들은 영화의 제목처럼 크고 작은 전투와 투쟁을 러닝타임 내내 이어간다. 이 지리한 싸움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사정이 있지만, 그 저변에는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그에 맞선 혁명가들 사이에 벌어진 거대한 신념 전쟁이 놓여 있다. 이 신념 전쟁은 특성상 상대가 절멸되어야만 끝이 날 수 있기에, 전쟁에 참가한 이들은 자신들의 신념과 역량, 여건이 허락하는 한 자신들의 진영에서 전투를 계속해 나간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큰 전쟁이 끝난 뒤에도 끊이지 않고 이어진 작은 국지전들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지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이 말을 한 누군가는 이 말로써 “당신이 무언가 신념을 갖고 행동한다면 당신의 삶은 전쟁터가 될 것”이란 의미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나, 과연 행동 없는 평화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나는 영화 속 혁명가들처럼 몇 발의 총알과 몇 번의 전투만으로 삶과 세계를 단번에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을 만한 시기를 오래전에 지나왔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삶이 낙원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러한 삶이 지옥과 같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행동하지 않는 삶은 행동하는 삶과 달리 승전의 가능성 자체가 없으므로 희망이 영(0)으로 수렴하는 단테적 의미의 지옥 상태다. 나는 이 지옥 상태를 오랜 기간 지나오면서 우리의 인생에 현재를 보류하는 삶을 천국으로 이끌 급행 티켓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엄혹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우리가 천국에 도달하기 위해—아니면 적어도 지옥으로 들어서지 않기 위해—우리의 생각을 반드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에 따라 이어지는 전쟁 상태를 기꺼이 감내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사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