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를 아직 정리하지 못했는데 어느새 새해입니다. 압박감에서 벗어나 자유롭던 여름과는 아주 상반된 가을과 겨울을 보냈습니다. 스스로 만든 울타리에 갇혀 뱅글뱅글 전력질주하는 경주마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성과 압박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일이 있었고 감정의 낙차를 크게 느끼기도 했습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난 후의 2025년을 한 마디로 평하자면 '내 그릇의 크기를 알게 되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근심은 이상과 현실의 나 사이의 괴리에서 온다더니 그 말이 딱입니다. 이상이 지나치게 높으니 좌절이 클 수밖에요. 저는 스스로를 꽤 큰 그릇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주변 사람을 품을 줄 알고, 업무도 능수능란하며, 생활 전반을 잘 정돈할 줄 아는 사람으로요. 그런데 저는 제가 국그릇 정도는 되는 줄 알았더니 간장 종지만 한 사람이었지 뭡니까. 간장 종지만 한 에너지밖에 없으니 사방이 구멍투성이입니다. 메꾸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정말 인정하기 싫고 고통스럽더군요. 종래에는 생활도 건강도 인간관계도 무너져 폭싹 주저앉아 버리더랍니다.
병가 기간 동안 침대에 누워서야 비로소 내 그릇의 크기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책임질 수 있는 범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인간관계도 그렇고 업무도 그렇고 사용할 수 있는 김난나의 에너지 총량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과신하지 말고 매사에 목표를 적당히 잡아야겠습니다. 뭐든지 밸런스 조절을 잘하자가 2026년의 목표가 되겠군요.
이와는 별개로 앞으로 살아갈 태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상하게 올해는 앞으로 남은 날들을 준비해야 하는 그 시작점처럼 느껴집니다. 살던 대로 살다가는 망신을 면치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좀 더 나은 어른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멋진 어른이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속마음은 아직도 이토록 철부지인데 이걸 어떻게 안 들키고 살 수 있는 걸까요? 다른 어른들도 사실은 점잖은 척하고 살고 있는 건가요?
젊음이 주는 혜택은 점점 사라져 갑니다. 이젠 사회적인 역할에 맞는 태도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큰 결격 사유가 됩니다. 하물며 옷차림까지도요. 깔끔하기만 하면 다 괜찮던 어린 날에 비해 좀 더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받는 것 같기도 합니다. 통통 튀는 자유분방함은 예측할 수 없어 불안감을 조성하는 사람이 되고, 어린 날에 입던 옷, 하던 화장을 고수하다가는 젊어 보이고 싶은 촌스러운 이모가 되기 십상입니다. 능력이 있으면 다른 건 다 상관없어!라고 말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능력만큼 중요한 것이 이런 눈으로 보여지는 것들이라는 것이 서글픕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능력은 기본이고 외형적으로도 스테레오 타입에 가깝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맨얼굴에 만 구천 원짜리 운동화 구겨 신고 다니던 때가 가장 반짝거리고 예뻤음을 지나고 난 후에야 압니다. 이제는 그런 반짝거리는 친구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고,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부단히 성장하는 것이 남은 날들의 과제 같습니다. 비록 마음속으론 나도 어쩔 줄을 몰라 비상벨이 삐용빼용 울릴지라도요.
혼자서 바르게 서는 법은 아직도 어렵습니다. 감정에 휩쓸리고 상황에 휘청이는 매일매일입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바들바들 떨면서 버티는 것이 어쩌면 삶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