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극 E에 감투 욕심도 있어서 어딜 가나 모임을 주도하고 싶어 한다. 관심받는 걸 좋아하고 먼저 나서서 대화를 이끄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내게 사별 후 찾아온 제일 큰 변화가 있다면, 말이 없어졌다는 것. 아무도 그렇게 보지 않는데, 스스로 가엾게 여기고, 위축되고, 말을 절제하게 된다.
내가 어떤 말을 꺼내도,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야기하다 보면 남편 얘기가 나올 것만 같아서 두렵다. 특히 나의 사별 사실을 아직 모르는 집단에 껴있을 때는 더더욱 심하다. 결혼은 했냐, 남편은 뭐 하는 사람이냐,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어쩌지 하는 만성적인 불안이, 내 안에서 말하고 싶은 욕구를 꾹 누르고 있는 느낌이랄까.
문득 <짱하로그>라는, 내가 즐겨 보게 된 사별 브이로그에 등장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직장에 연차를 내려고 '친정' 다녀와야 한다고 말하려던 상황)
‘아 맞다, 나 미혼이지?
친정 아니고 본가라고 해야 하는 거지?
말을 가다듬고, 굴리고, 정제한다.
들키지 않기 위해서!
나는 늘 말을 실수할까 봐 예상하고
정제하는 사람, 비밀이 생긴 사람.'
영상에서 이 부분을 보고 참 많이도 울고 공감했더란다. 성대에 필터가 하나 껴 있는 느낌. 상처가 있는 사람들만 공감할 수 있는, 말을 하려 할 때마다 느껴지는 이 필터.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 생겨버렸다.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 비밀이 들춰질까 봐, 스스로 말을 아끼게 된다.
그런데 얼마 전엔 난데없이 기습(?) 공격을 당한 적이 있다. 아들과 서점에 책 구경을 하러 놀러 갔는데, 범인은 바로 주인아주머니였다.
“아가~ 왜 이렇게 예쁘게 생겼어? 아빠는 어디 가셨어?"
책을 구경하다 갑자기 훅 들어온 어퍼컷에 정신이 아찔했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고, 목울대가 턱 막히고, 눈물샘이 바르르 떨렸다.
‘예준아, 제발 대답하지 마, 제발... 그냥 아빠 일하러 갔다고 해. 아님 여행 갔다고 말해 제발...’
엄마의 간절한 애원은 안타깝게도 아이에게 닿지 못했다.
“우리 아빠 하나님 나라 갔어요.”
“응...? 아니, 아빠 어디 갔냐고~"
"우리 아빠 하나님 나라 갔는데? 하나님 나라."
“...”
너무 놀라 말이 없어진 주인아주머니. 그대로 나를 쳐다보셨다. 뭔가 부연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그 표정을 절대,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았지만 마주해야 했다.
'뭐가 더 설명이 필요해요 아줌마, 하나님 나라 갔다잖아요...'
속으론 아주머니를 원망했지만, 사실 아주머니는 죄가 없다. 그저 서점에 쫄랑쫄랑 놀러 온 아이가 귀여워 말을 거셨을 뿐.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서 먼저 떠나게 됐어요."
"에고... 젊은 나이에 어떻게..."
우리의 어색한 대화는 이렇게 끝이 나고, 나는 도망치듯 서점을 빠져나왔다. 아이를 힘껏 붙잡은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언제까지 이렇게 맘 졸여야 할까. 언제쯤 나는, 오빠와의 사별이 자연스러워지고 다시 예전의 당당한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2023년 12월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