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날
남편이 하늘나라로 간 건 작년 5월, 아들이 네 살 때.
정말 오래전 일 같이 느껴지는데 글로 적으니 막상 얼마 안 되었네, 하는 생각이 스친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4세부터 매년 10월이면 운동회를 한다. 그래서 내 아이는 생애 첫 운동회를 작년 10월에 한 번, 두번째 운동회는 엊그제 한 번. 두 번 모두 아빠 없이 겪었다.
예상되는 슬픔은 비교적 덤덤하게 지날 때가 많았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단단히 무장해서일까.
이를테면 남편의 생일이나, 기일처럼 특별한 날들.
그랬던 내게 운동회는 마치 복병 같았다.
별생각 없이, 아무런 준비 없이 있다가 슬픔에 기습 공격을 당했으니 말이다.
특히 작년, 내 아이의 생애 첫 운동회는 사별 직후였던 터라 더더욱 그랬다.
아무 생각 없이 우리 아이 첫 운동회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갔다가, 강당 구석에 쪼그려 펑펑 울기만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엄마에, 할머니 할아버지에, 이모까지.
총 다섯 명이라는, 적지 않은 인원이 참석했음에도
그 당시 내 눈에는 왜 그렇게 다른 가족들 사이에 듬직하니 서 있는 아빠들의 모습만 커 보였는지.
“자, 다음은 아빠들 경기입니다. 각 팀에서 아빠들 10명씩 나와주세요!“
진행자가 아빠들을 하나 둘 모집했다. 우리 가족을 휙 지나쳐 다른 집 아빠들을 데려가는 그 장면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 순간 딸의 기분이 신경쓰였는지... 친정 아빠는 잽싸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이 아빠인 척, 경기에 참여했다.
나는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며 깔깔 억지로 웃기도 했다가, 덤덤한 척도 했다가, 그런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져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나 한바탕 울고 오기도 했다.
그런 나를 멀찍이 앉아 지켜보며, 우리 엄마는 아무 내색 안 했지만 속으로 얼마나 울었을까. 지금 생각하니 그것도 참 슬프다.
그렇게 울다 끝난 첫 운동회.
내게 운동회는 그런 날이다.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슬픔에 폭격을 당하고 온 것 같은, 그런 날.
엊그제 두 번째 운동회에 갔다. 내 아이의 생애 두 번째 운동회이자, 아빠 없이 하는 두 번째 운동회이기도 하다.
작년보단 덜 울었지만, 여전히 내 눈은 자꾸만 다른 집 아빠들을 향해 있다. 그리고 여전히, 내면에 기쁨보단 슬픔이 차 있다.
우리 가족은 다섯 명이나 되는데도
아빠가 껴 있는 다른 집 세 식구가 더 커 보이고, 꽉 차 보이고, 완전해 보인다.
이상한 착시 현상이다.
내 아이가 경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면 내 아이를 응원하며 주의를 환기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내 아이는 수줍음이 많다. 운동회가 끝날 무렵까지 한 개도 참여하지 않았다. 전체 아이들이 준비한 율동 공연도, 준비 체조도, 장애물 달리기도, 깃발 꽂기도, 민속놀이도.
단 한 개도 참여하지 않고 엄마 다리에 찰싹 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엄마 속도 모르고.
그러다 운동회가 거의 마무리될 무렵, 마지막으로 달리기 경기가 남아있었는데 기대도 하지 않았던 내 아이가 갑자기 자원해서 손을 들고 달려가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드디어 내 아이가 나가다니,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무언가에 도전해보다니...!!
나는 기뻐서 시작도 안 한 경기에 내 아이가 뛰려고 준비하고 있는 모습만으로도 휴대폰 카메라를 쉴 새 없이 찰칵댔고, 내 아이가 뛰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고 싶어 동영상 녹화 버튼까지 눌러놓았다.
드디어 아이 차례가 되고, 출발 소리와 함께 내 아이는 힘차게 달렸다. 그런데...
동영상을 찍던 손이 무색할 만큼, 얼마 안 있어 내 아이는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하늘까지 부풀었던 풍선이 내 안에서 갑자기 펑 하고 터져버린 기분이었달까.
평소 넘어져도 씩씩하게 잘 일어나던 아이였다.
그랬던 내 아이가, 오늘은 이내 울음을 터뜨리고 혼자 일어나질 못했다.
곧바로 아이에게 달려가지 못하고, 그냥 우두커니 서서 내 아이가 우는 것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던 것 같다. 그 순간 나는 왜 아이에게 곧바로 달려가서 안아주지 못했을까.
아이를 보며 내 모습 같다고 느꼈던 걸까.
훌훌 털고 일어나지 못하고, 계속 넘어진 상태로 울고 있는, 그 모습이...
아니면 그냥 그날 하루 꾹꾹 눌러왔던 깊은 슬픔이,
넘어진 아이를 핑계 삼아 터져 나온 것이었을까.
넘어져서 우는 아이와 함께, 나도 한참을 울었다.
결국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아이를 일으켜 안아주셨고, 나는 아이를 도저히 볼 용기가 안나 아이를 피했다. 그렇게 아이도 나도, 한참을 울다가 달리기는 끝나게 되었다.
처음 용기 내어 도전한 달리기인데,
얼마나 잘하고 싶었을까.
엄마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이모 앞에서,
얼마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그런데 그게 다 물거품이 되어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 길었던 울음에서 내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 함께 울었다.
또 한편으로는,
다시 일어나서 뛰면 되는 걸, 그게 그렇게 어려웠니!
네가 얼마나 어렵게 마음먹고 도전한 건데, 그렇게 주저앉아 울기만 했어야 했니!
하는 생각에 화도 뽀롱뽀롱 났다.
그러다 문득, 내가 그 화를 나 자신에게 내고 있음을 알아차리니 눈물도 났고.
남편 없이 지금껏 잘 살아왔으면서, 또 울고 있니!
어서 눈물 닦고 털털 털고 일어나야지, 뭐 하는 거니!
사실 이런 뜻이었던 걸까.
이젠 괜찮아진 듯하다가도 오늘처럼 삶에서 이런저런 순간을 맞닥뜨릴 때, 내가 아직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마다 아프기도 하지만, 감사하기도 하다.
아직 괜찮지 않은 나 자신을 돌볼 수 있어서.
나 아직 울 수 있구나, 내 안에 슬퍼할 힘이 남아있구나, 이를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나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