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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레네 Aug 12. 2024

위로가 이렇게 유쾌할 수 있다니

사별 후, 한동안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었다. 아니, 정확히는 외모에 쓸 힘조차 없었다. 그러다 문득 보이지 않는 마음이 죽을 것 같으니, 보이는 외모라도 가꾸면 좀 나아질까 싶어 어느 날 큰맘 먹고 미용실을 가기로 했다. 나는 미용실을 워낙 귀찮아하는 사람이라, 가기전에 늘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검색해 보니 다행히 집 근처에 평 좋은 미용실이 하나 있었다.


그렇게 원장님과 나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자기 바로 집에 갈 거야? 아님 약속 있어? 약속 있으면 드라이 하고 가.”

 “아, 애기 어린이집 하원을 5시쯤 해야 해서요.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애기 있어? 아가씬 줄 알았더니, 결혼을 언제 했대?”

 

 결혼 이야기에 갑자기 내 몸이 먼저 이상 반응을 느꼈다. 사별 후 익숙해진 이 반응. 심장이 쿵 하고, 목울대가 메어 오고, 눈물샘이 파르르 떨리는.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나는 사별한 이야기를 줄줄줄  꺼내기 시작했다. 마치 내 몸이 이야기를 품고 있다가 고통스러워서, 더는 참지 못하고 토해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머리도 거의 다 끝나가는 마당에,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은 사별 이야기를, 아니 오히려 듣는 사람이 불편해할 사별 이야기를, 대체 왜?


이야기를 무의식 중에 실컷 풀어놓으면서도, 나는 속으로 그렇게 후회하고 있었다. 그런데 원장님은 뜻밖에 그다지 불편한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 사별 이야기를 듣고도 담담해서 내가 더 놀랐다.


게다가 남들이 종종 하던 불편한 질문들,

이를테면

“왜 검사를 미리 안 했어?”

“서울 큰 병원으로는 안 가봤어?”

와 같은, 그런 질문들을 하지 않아 줘서 고맙기까지 했다. 생각해 준답시고 꺼내는 어설픈 조언이나 섣부른 위로 없이, 그냥 지금의 나에게 가만히 귀기울여 주던 느낌이랄까. 그리고는 본인도 담담하게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사실 들어올 때부터, 자기 얼굴빛이 어둡더라. 무슨 안 좋은 일 있는 사람인가 했지. 그게 사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남에게 이야기를 꺼낼 힘이 있는 사람들은 잘 살아내더라. 얼마나 힘들었대. 애기도 돌봐야 하고. 사실 나도 애기 둘 혼자 키워. 얼마 전에 이혼했거든.”

 

 신기하게도 이혼이란 단어 하나에 정서적 친밀감이 훅 높아졌다. 그렇게 우리는 돌싱들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슬픈 이야기들을 깔깔 웃으며 나눌 수 있었다.

이런 걸 웃프다고 하는 건가.


돌싱글즈 보다가 출연진들 자녀 공개할 때 같이 펑펑 울던 순간, 사랑 노래 듣다가 못 듣겠어서 욕하며 꺼버리던 순간, 나들이 갔다가 아빠가 듬직하게 껴 있는 완전한 4인 가족을 보면 괜히 위축되어 눈물 바람으로 돌아오던 순간, 등등.


나만 겪은 줄 알았던 순간이
다른 이에게도 있었음을 알게 될 때.
인간은 위로란 걸 받게 되는가 보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니.

 “원장님도 그랬어요?”

 “자기도 그랬어? 신기하네.”

신기했다. 각자 서로의 이야기를 꺼낸 것인데, 꺼낼 때마다 이 말이 반복되는 것이.


 얼마 전 방문했을 땐 원장님이 소개팅 안 들어오냐고 묻길래, 한참 많이 들어왔었는데 거절했었다고, 근데 이제 슬슬 누구도 만나고 그러면서 인생을 좀 즐겁게 살아야겠다고 했더니, 이런 명대사를 날려 나를 한바탕 꺄르륵 웃게 만드는 게 아닌가.


“아니, 이 언니도 아직 못 가고 있고만
어딜 먼저 가? 순서 지켜라잉?
먼저 가기만 해 봐!”


ㅋㅋㅋ

이런 능력은 어디서 배우는지. 타고나는 건가.

사별한 나에게 누가 이런 말을 던질 수 있을까. 난생처음 받아보는 이런 식의 위로가 신선하고 재밌다.


어떨 땐 가까운 사람들의 지나친 배려가 마음을 더 불편하게 할 때도 있다. 내 기분을 신경 쓰느라, 내게 상처 주지 않으려고 더 머뭇거리며 조심하는 순간들. 마음은 고맙지만, 그런 마음들이 느껴질 때 오히려 나는 더 불편하고, 때론 더 상처로 다가오기도 한다.


 지나치게 나를 걱정하며 내 삶에 간섭하지 않을 사이. 적당히 거리도 있고 서로에 대한 정보도 별로 없지만 돌싱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정서적 친밀감은 조금 높은 사이. 그래서 더 남들에게 못하던 이야기도 편하게 나눌 수 있었던 걸까.


전에는 귀찮았던 미용실 가는 날이, 이제는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어떤 머리를 할까’보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를 더 생각하며 설레기까지 하니 말이다.


*커버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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