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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레네 Jul 29. 2024

사별한 나를 위로했던 말들

서른 여섯 남편의 장례식.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주었고 곁에서 함께 울어주고, 나름의 방식으로 위로를 전했었다.

모든 위로가 소중했지만 제일 마음에 와닿았던 위로들은 다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내가 통과하는 시간의 속도를
거스르지 않았다는 것


물론 잘 안다. 여러 형태의 위로들이 다 같은 마음에서 시작한 위로였음을.

이런 큰 일을 겪어보지 않아 위로에 서투른 나도, 지난날 많은 장례식장에서 그렇게 위로를 전했었으니까. 막상 내가 받아보니 소중하지 않은 위로는 없었다.

다만, 조금 더 와닿는 위로가 있을 뿐.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포근히 매만져줬던 위로들은다 결코 내 시간의 방향을 역행하지 않고, 그 시간에 함께 머물러주었던 것 같다. 


어떤 이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왜 큰 병원으로 안 갔어?
요즘은 젊은 나이에도 검진 많이들 하던데, 검진 받을 생각은 못했었어?
이거 의료사고 아니야? 의료사고 인정되면 얼마라도 보상 받을 수 있을텐데...

하는 위로를 건넸다.

내가 이미 힘겹게 지나온, 어찌할 수 없던 과거를 계속 캐묻고 반추하게 하는,

굳이 그런 말들이 아니어도 이미 충분히 자책의 늪에 빠져있는 나를 더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뜨리는, 그런 말들이었다.


후에 이런 말들을 들었었다고 지인들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냐고, 진짜 못된거 아니냐고 나보다 더 화를 내주었지만,

사실 난 그들이 밉진 않다. 아니, 정확히는 내 안에 그들을 미워할 에너지조차 없었다.

차라리 그들을 미워하면 내 마음이 편할 텐데,

"맞아, 내가 왜 그랬을까? 왜 처음 염증을 발견하자마자 서울 큰 병원으로 갈 생각을 못했을까?"하며

어느새 그 말들은 내 마음속에서 나 자신을 사정없이 쑤시는 흉기가 되어있었다.


한편 어떤 이들은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시간을 지나쳐도 한참 지나쳐 이미 스스로 정한 목적지에 도달해있기도 했다. 터덕터덕 아직 한 발짝 떼는 것조차 힘든 내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며 아직 방향도 정하지 못한 나를 자기만의 결론에 미리 데려다 놓는 이들이다.


내 직장 동료도 젊은 나이에 그랬는데, 사업가 만나서 더 잘살더라니까~
설마 애기 생각해서 그냥 혼자 지내며 버티려는 건 아니지? 니 인생이 더 중요해.
금방금방 잊어지더라. 지금 당장 못 살 거 같아도, 금방이야.


나를 자책하게 하는 말들 만큼이나, 이런 말들도 듣고 있기가 조금 힘들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런 말들을 꺼낸 이들이 절대 밉진 않았다. 어떤 마음과 의도로 그런 말을 꺼내는지, 그리고 그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고민하고 나름 선별하여 꺼냈을지를 알기에. 지난 날의 나도 남을 그렇게 위로했기에.

그런 말들을 듣을 땐, 단지 내 속도를 온전히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을 뿐.


진정한 위로로 다가와 내 가슴 깊이 내려앉은 말들은 의외로 단순한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오빠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그치?
오빠가 얼마나 아팠을까, 그리고 너는 곁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 현재라는 시간을 터덕이며 지나고 있는 나의 곁에 함께 머무르며, 내가 지나고 있는 시간의 속도를 거스르지 않던 말들.


아니면, 그저 실컷, 상주인 나보다 더 눈물 콧물 쏟아내며 아무런 말없이 울어주던 사람들.


진짜 울고 있는 내 마음 속에 들어와 내 안의 모든 울음이 증발할 때까지 그 시간에 함께 머무르며 함께 그 울음을 모조리 빼주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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