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교, 그러나 변함없는 사랑의 대상들

by 에이레네
눈앞에서 문이 닫히고 모든 시끄러운 일상들이 문 뒤로 물러났다. 눈앞에 오로지 사랑의 대상들만이 남았다. 세상이 사랑의 대상들과 소란하고 무의미한 소음들의 대상들로 나뉘어 있다는 걸 알았다.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중에서


철학자 김진영이 죽음 직전까지 메모장에 썼던 글들의 일부이다.


죽음을 앞둔 철학자에게 사랑하는 일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긴박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이 문장이 좋아서, 계속 읽고 또 읽었다.


교직에서의 삶도 다르지 않다.

내 눈앞에도 매일매일 소란하고 무의미한 소음같은 일들과, 사랑의 대상들. 이 둘 뿐일테다.


결국 사랑하는 일이 아니면, 다 껍데기인 셈이다.

교사로서의 삶도, 우리 인생도.


남편의 죽음을 겪은 후, 나는 남은 날들을 어딘가에 모조리 쏟아붓지 않으면 남은 삶을 견뎌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매일밤 찾아오던 그 지긋지긋한 무의미와 공허가 나를 미치게 했다.


결국 사랑 뿐이었다.

내가 내 남은 날들을 쏟아부어야 할 곳은.


올해 학교가 바뀌었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학생들을 마주하지만, 매일 기도할 때마다 그분이 주시는 음성은 동일하다.

“딸아, 내 양들을 부탁한다.”


아니, 그 음성이 이전보다 더 강력해진듯 하다.


올해도 변함없이 3월이 되자마자 플래너에 새기고, 마음에 새긴 이 문장.


가장 사랑이 필요한 아이는 가장 사랑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사랑을 요구한다.


옮긴 학교는 나의 사랑을 요구하는 대상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훨씬 더 거칠고, 때로는 비열하고 악하게까지 느껴진다. 이제 겨우 만난지 두달이 채 안 됐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할 일은 결국 그들을 끌어안는 일.

그들이 부모와 친구들에게서, 이 사회에서 평생 받지 못했던 존중을 조금씩 선물하는 일.

상처투성이인 그들의 내면에 가려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일.

그들의 내면 어딘가에서 웅크리고 있을 하얀 늑대들에게 먹이를 주는 일.

그들 내면에 단 1%라도 분명 존재할 선의 영역을 자꾸 들여다봐주고 그곳에 끊임없이 빛을 비춰주는 일.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내 힘으로는 언제나 불가능하기에... 더 그분앞에 엎드려 내 안에 사랑과 연민과 용기가 메마르지 않도록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는 일.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