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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레네 Sep 11. 2024

아이들은 교사의 시선을 닮는다

*커버사진출처: pixabay


1학기 내내 속을 맨날 뒤집어 놓던 놈이 있다.

친구들 돈 뺏기, 패드립은 기본.

담배피다 매번 주민들에게 신고되기 일쑤였고,

아파트 유리를 깨고 방충망을 찢어놓기도 하고.

그뿐일까, 사기에 절도에 도박에 아주 그냥

추석 종합선물세트 같던 놈이었다.


그런들 어쩌나. 이런 놈들이 내가 폼 잡고 무섭게 한다고 내 말을 들을까? 퍽이나. 앞에서 쎈 척하며 욕 한 바가지 쏟아내면 날 무서워할까?


결국 마음이 열려야 한다. 난 그렇게 믿는다.

내 말이 그놈 귀에 들리려면, 마음이 열려야 한다.

제일 마음 문을 열기 힘들던 놈.


감사하게도, 한 학기 동안 보여준 나의 진심이 통했는지 이 아이는 점차 마음을 열어주었고 2학기가 되어서는 조금씩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엔 이 아이 어머님이 전화로 이런 말을 전해주셨다.

“우리 준호가(가명) 한동안 죽고 싶다고 했어요. 이번 생은 망했다고요... 자기는 인생 잘못 살았고 쓰레기고 범죄자고 선생님들도 다 자길 그렇게 취급한다고요. 근데 자기는 학생부장 선생님 때문에 학교 간다네요. 선생님이 좋대요. 저희 아이 내치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아 주셔서 감사해요... 잘하고 있는 거 하나도 없는데 좋은 면을 봐주려고 애써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날 내가 통화가 끝나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한테는 전혀 표현하지 않는 이 아이의 진심이 엄마를 통해 전해진 것 같아서, 기쁘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한 그 감정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아이는 이번 생이 망했다고 믿는 아이다. 모든 사람이 자길 범죄자 취급한다고 믿는 아이다. 선생님들도, 친구들도 모두 자기를 그렇게 보는 이 학교란 공간에 오기 싫은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준호(가명)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준호를 돕기 위해 생활부장 선생님과 나는 학급 아이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주 무모한 도전을 했다. 준호가 없는 날 학급 서클을 열어 준호의 장점을 이야기해 보고, 준호를 우리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기로 한 것.


30명가량의 아이들 중, 몇 명이나 준호에 대해 긍정적인 말을 해 줄까. 아니, 긍정적인 말이 나오기나 할까. 학생부장 선생님은 왜 이런 애들 정학 안 시키고 놔두는 거냐고. 반 바꿔달라고. 이런 원망만 한 시간 동안 듣다가 끝나는 건 아닐까.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교실 바닥에 침을 뱉고 우유를 붓기도 하고, 어느 날은 쓰레기통을 죄다 바닥에 엎어놓고 튀기도 했던 놈이기에. 아마 그동안 쌓인 학급 아이들의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학급 서클.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기 전, 이 모임의 취지를 먼저 간단히 설명했다.

“여러분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압니다. 여러분이 받은 피해, 선생님도 너무나 잘 알고 그걸 그냥 넘기고 싶은 마음은 절대 없습니다. 언제든 힘들면 와서 얘기해 주세요. 다만, 이 시간만큼은 준호가 우리 반에 저질렀던 일들 말고, 준호라는 이 사람 자체에만 주목해봤으면 합니다. 이 학교에 준호가 설 공간은 더이상 없어 보입니다. 준호에겐 이 학교의 모든 사람들이 적이고 그런 공간에 당연히 그 누구도 오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이 모임의 목적은 준호가 한 모든 일을 용서하자는 것도, 준호를 억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준호가 이곳에 머무를 때 ‘아, 여기가 내 자리지’ 하는 그 작은 공간, 그 틈을 여러분이 내어주는 것. 조금만 준호에게 마음을 열어 그 자리를 내어주는 것. 그 아이도 이 공간에 ‘소속’되어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 그것 하나면 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

그동안 준호에게 받았던 피해와, 그때의 느낌들, 존중받지 못했던 욕구들을 먼저 나누었다. 그리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를 골몰하며 함께 나누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아이들이 보화를 캐내듯 장점을 발견해 주었다. 그 순간 눈물 나게 고마웠다.


귀여운 구석도 있어요. 낙천적이에요. 긍정적이에요. 잠을 잘 자요. 한 번씩 대답도 해요. 밥을 잘 먹어요. 과자를 잘 먹어요. 모둠활동에 한 번씩 참여도 해요. 목소리가 커요. 등등.


그리고는 준호를 돕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간단히 나누고, 서클을 마무리했다.

사실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이 서클의 과정 자체였다.

이 대화 가운데, 내가 준호를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 아이들이 느끼길 바랬고, 아이들도 그런 따뜻한 시선으로 준호를 봐주길 바랬던 것 같다.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그 반 아이들은 준호를 전보다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고 있다.


얼마 전 수업 시간에는 난생처음으로 준호가 학습지 양면을 다 채웠다. 전엔 수업 시간에 자거나, 과자 먹으며 돌아다니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었는데. 처음 있는 일이라 아이들이 모두 신기해했다.

기초가 전혀 되어있지 않아 남들보다 채우는 속도가 2배는 더 느렸지만, 몇몇 아이들이 이렇게 외쳐줬다.

“선생님, 준호 아직 안 썼어요! 기다려주세요!”

“선생님 준호 이제 공부한대요. 고등학교 시외로 가기 싫대요.”

아이들이 깔깔깔 웃어댔다. 준호도 그런 관심이 싫진 않은 표정이었다. 칠판을 지우지 않고 조금 기다려주고 나니 준호가 다 채운 학습지를 머리 위로 흔들어댔다. 자기 좀 봐주라고.(ㅋㅋ) 그래... 잘했어...


아직 그 변화의 폭은 더디지만, 분명 나와 아이들의 따뜻한 시선이 이 아이에게 내리쬐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 아이도 언젠가는 자기가 만나는 모든 이들을 이렇게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사람이 되어있을까...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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