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은 무엇인가
이따금 생각나지만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라, 만나지 못하는 옛 친구가 있다. 알아보려고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지금은 그냥 그리워하면서 내 마음에 새긴 친구이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적은 아마도 대학교 2학년 때가 아닌가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만났으니까 참으로 짧은 만남이다. 콜라를 정말 좋아해서 하루에 1.5리터를 마시고, 시험 끝나면 하루 종일 그동안 못 봤던 영화를 몰아본다는 그녀. 독특했지만 따뜻했고,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성장한 듯 보였지만 개방적인 시각을 가졌다. 그녀가 즐겨듣는 팝을 하나도 모르는 나랑 친구가 되었으니까. 난 그녀처럼 미술을 전공하려고 화실에 다니지도 않았다. 도대체 우리가 왜 친해졌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내가 목표한 대학에 불합격하여 재수하고 있었을 때도 그녀는 그녀답게 관계를 이어갔다. 아주 짤막한 편지를 두 번 보내왔다. 그때는 집 전화 외에 연락할 방법이 없었던 시절이라, 아무래도 편지를 썼겠지만, 한 장 분량이 되지 않아 편지치고는 조금 긴 메시지 전달에 가까웠다. 난 그녀가 자유로운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죄수 같은 재수 생활에 그녀를 떠올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꽤 오랫동안 그 편지를 봉투와 함께 보관했다. 아마도 이 말 때문이지 않았을까. “재수 생활, 생각만 해도 정말 힘들겠어.” 평소 말투가 문어체로 전이되면서, 그녀가 짧은 글에 얼마나 큰 고민과 배려를 담았는지 느껴졌다.
드디어 대학에 합격하고, 우린 그녀가 아르바이트하는 카페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공교롭게도 나는 근처 주택가에서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때가 생각난다. 아주 아담하면서도 아늑한 동네 카페였다. 손님은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녀가 그 공간에 제법 잘 어울렸다. 그녀는 대학 입학을 축하한다며, 빨간색 장미꽃 한 송이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주었다. 작가도 낯설었고, 표지의 그림도 이상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출판사 책이었지 않나 싶다. 역시 그녀답다고 생각하며 집에 가져와 식구들 눈에 띄지 않게 읽었다. 표지 그림이 야릇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내가 대학 생활을 시작하듯, 그 소설의 주인공도 대학교 때의 일을 회상하고 있었다. 감수성이 팔딱팔딱 솟구치는 그때, 그 소설은 내면에 뿌리 깊게 내려앉았다. 책이 닳도록 읽고 그 소설에 대한 논평으로 대학 시절 소(小)논문을 쓰기도 했다. 급기야 흉내 내 습작하기에 이르렀다. 소설 속 인물인, 와타나베와 미도리를 내 앞에 꺼내놓고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 미도리처럼 보이려고, 한때 빨간 베레모를 쓰고 다니기도 했다. 정말 그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았다!
그녀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밤.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가 집을 바래다준 것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이상하다. 어쨌든 그녀와 나는 똑같은 친구 사이니까. 그런 게 아니더라도 사실 그날은 그녀가 미술 공부를 하러 이태리로 유학가기 전 마지막 만남이었다. 배웅해 줘도 내가 하는 것이 옳았다. 그런데 그녀는 만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리 집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 그래도 족히 30분은 걸어야 하는 - 그렇게 하겠노라 우겼다. 몇 번을 완강히 거절하다가 결국 우리 집까지 걸어갔다. 구불구불 몇 번의 좌회전과 우회전을 통해 있던 골목집. 전형적인 주택에 있는 집은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초행길을 즐겁게 걸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녀가 도대체 무사히 골목을 빠져나가 큰길까지 갈 수 있을까 염려했던 점이다. 핸드폰이 없던 그 시절엔 그런 것을 확인하기도 막막했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증폭할 때면 학교 도서관으로 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놓여있는 서고 깊숙한 곳에 아예 의자를 갖다 놓고 닥치는 대로 읽었다. 분명 그녀는 일본이 아니라 이탈리아로 갔는데도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전해준 소설은 그녀의 정신이었으니까. 마치 ‘노르웨이의 숲’에서의 기즈키와 나오코의 관계처럼. 그러면서 문득 작가에 대한 작은 호기심이 일었다. 마치 ‘바람의 노래’를 듣듯이.
무라카미 하루키 씨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젊은 작가가 아니었다. 1949년생이니까 우리 엄마보다도 한 살 많으시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일찍이 결혼하고, 재즈 카페를 운영했다. 그러다가 문득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어 1979년에 데뷔했다. 그리고 1987년 발표한 문제의 ‘노르웨이의 숲’으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처음부터 이목을 끌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이후 찾으려고 해도 본래 갖고 있던 이미라 씨 번역판은 더 이상 출판되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오히려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출판된 이후에 인지도가 커진 듯하다. 비틀즈의 노래 제목인 원제는 너무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모든 외형적인 사실을 떠나서 하루키 씨가 마음에 들었다. 마치 하나의 선물을 받고 그 사람의 전부를 신뢰하게 된 것처럼. 그의 수필집에서 본 바에 의하면, 그는 일반 직장인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서 글을 쓴다고 한다. 아니 평균 직장인보다 더욱 건전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꾸준히 조깅한다. 낮에, 정해진 시간을 두고, 분량을 정해 글을 쓰고 있다. 한마디로 자신을 단련하는 사람이다. 피츠제럴드의 개츠비처럼. 그런데 그 단련 속에서 자신을 무겁게 다루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자신의 가치관 속에 매몰시키지도 않는다. 쉽게 말하면 그는 인간 사이 가장 중요한 것을 뼛속 깊이 알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여느 친구들처럼 직장 생활을 하지 않고, 오랜 결혼생활을 두 부부의 개성과 조화로 이끌고 있다. 일본 문단에서 노벨상 후보로 꼽히는 작가이지만, 정작 그의 소설에서는 일본적인 색채가 적다. 미국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번역 활동을 하기도 한다.
그녀는 나에게 대학 축하 선물을 주었다. 집까지 같이 가 주었다. 내가 그녀에게 축하 선물을 미리 줘서가 아니고, 그녀 집을 가본 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나에게 바란 것은 오직 나의 이야기였다. 특별히 그녀가 눈빛을 물방울처럼 만들며 들었던 이야기는 나의 짝사랑 이야기였다. 한 번도 얼굴을 못 본 사람, 그래서 남들은 답답하다고 미련하다고 하는 사랑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를 할 때 그녀는 얼굴을 발그레 만들며 흥미로워했다. 그렇다고 서로의 취향이 비슷했던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잘 들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지금도 궁금하다. 마치 자기 일처럼 웃고 애달파했으니까.
지금도 일상에서 답답함이나 공허함을 느낄 때면 소설을 읽는다. 그녀는 지금 내 옆에 없지만 그녀의 정신은 남아 있다. 하루키 씨는 앞으로도 서로 만날 일은 감히 없으리라 예상하지만 내 옆에 있다. 우리는 모여서 차를 마시고 맞장구도 치며 이야기한다. 오늘이 그냥 흘러가지 않는 것은 우리의 만남이 남기 때문이다. 존재감이 순간이 아니라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늘의 달빛일 때, 고개를 끄덕이며 들을 수 있다.
누구도 하늘의 달은 하나라고 말한다. 하지만 ‘1Q84’의 세계에서는 둘이 될 수 있다. 내가 아닌 타인을 이해할 때,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서 애정을 가질 수 있을 때 세계는 더욱더 풍요롭게 돌아간다. 소설 속에는 분명 타인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세계가 있다. 그 속에 들어갈 때, 될 수만 있다면 빠져들어 갈 때 우리는 그동안 알고 있던 세계를 공기 번데기처럼 확장할 수 있다. 남을 파괴하는 확장이 아니라, 나와 같은 존재로 포용할 수 있는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 그래서 소설을 읽는다. 책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