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빛

- 나의 존재가 계속되는 법

by 리라

“나는 옛날부터 이런 ‘망상’을 좋아했다. 이에 대해 사기다, 속임수다, 허튼 소리 한다, 절대 하기 어렵다, 불가능하다 등 뭐라고 하든 아무렇지도 않다. 별소리를 다 들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할 수 있다는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 나는 이 상상력을 언제든지 염두에 둔다.

- 나가오카 겐메이, ‘디자이너 마음으로 걷다’ 중



바야흐로 백세시대이자, 심각한 저출산 시대이다. 학교는 문을 닫고, 유치원은 요양원으로 간판을 바꿔 단다. 중장년 세대뿐 아니라 아이들도 이것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일 때가 왔다. 우리는 급변하는 바다의 파도를 보다가 거대한 바다 한 가운데를 가 보지 못하고, 모래사장에서 죽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세대는 입수해야 한다. 우리 세대는 AI에 기대 생을 지탱하고자 하겠지만, 지금 공부하는 아이들은 AI의 파도를 타며, 더 멀리 있는 대양으로 나아가야 한다. 생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사회적 일을 영위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앞으로 우리는 그들의 눈에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학 진학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불어 넣을 필요가 없다. 소위 명문대에 진학하면 취업이 보장되는 시대는 사라진 지 오래다. 약속된 정년도 없다. 운이 좋아 정년 퇴직을 했다 해도, 앞으로 남아있는 생이 너무 길다. 우리와 다른 여정을 겪게 될 미래의 사회인들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은 날 것의 지식이 아니라, 삶에 대한 관점과 그것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발산되는 지혜일 수밖에 없다. 지적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젊은 이야기 상대에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신선함은, 젊은이가 선호하는 브랜드 옷을 입고, 피부 시술을 받은 탱탱한 얼굴이 아닐 것이다. 어차피 진짜 젊음만 못하다. 부질없는 것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은 허무하다. 내가 그저 내보일 수 있는 것은,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화하지 않는 가치를,

소실되는 것들에서, 소실될 수 없는 것을

간직하고 있다는 오직 그뿐이다.


그것은 사람의 내면에 간직되어 있다. 밖으로 발산되기 전까지 안에서 고요히, 조심스럽게, 그러나 체계적으로 건설될 수 있다. 그것은 미세해 보이나 강하다. 그것을 갖고 있으면, 현실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다. 바람직한 방향성을 가질 수도 있다. 죽기 전까지 계속되는 발자취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소위 기존의 사고를 파괴하는 동시에, 논리적으로 기존의 방식을 전복시켜야 하기에 혁신을 이룰 수 있다. 전기 자동차든, 자율 주행 비행기든 상관없이 그것의 원동력이 에너지 자원으로 존재해야 하듯, 입시를 치르는 학생의 사고에도 이 에너지원이 존재해야 한다. 바로 상상력이다.

우리에겐 꿈이 있어야 한다. 누구도 허물 수 없는 꿈이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모두를 위한 꿈. 그 꿈의 다락방에 살포시 놓이게 될 사다리. 대학은 사다리의 한 조각이지, 꿈 자체가 아니다. 그에 비해 상상력은 나의 정신에서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 사다리와 같다. 꿈으로 올라가기 위한 위대한 도전의 계단이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상상이 이런 것은 아니다. 번지르르해 보이나, 사실은 비루한 꿈과 상상도 있다. 그러므로 상상은 ‘빛’이 있어야 한다. 알다시피 빛은 세상을 비춘다. 나만을 위한 빛은 의미가 없기에, 세상이 보기에 그것은 결국 어둠과 같다. 세상을 향한 상상이 열릴 때, 그것은 빛이 되고, 뻗어나가며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터널 속 입시에 시달리는 청소년에게 그야말로 한줄기 빛이 형성된다. 그 온기를 안고 가기 위해서 시선을 최대한 세상에 돌려야 한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최대한 상세히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여러 특징을 머릿속에 정리하며, 입체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그러므로 학생들에게는 고요히 사색할 시간이 필요하다. 앞서 말한 대로 같은 책을 읽은 여행자들끼리 지적 대화를 나누며, 세계에 대한 다른 관점을 확인, 소통, 설득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반대급부로 마치 ‘자가 발전기’처럼 나만의 에너지를 축적하는 시간도 필요한 것이다. 상상의 빛이 반짝 들어오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머리가 평안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책,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보면, 릴라가 중학교 진학을 가정 형편상 못하게 되면서, 아버지가 하던 구두 수리 대신, 자기만의 멋진 구두를 만드는 걸 꿈꾸게 된다. 상상을 기반으로 구두를 디자인하는 가운데, 그것을 제작하기 위한 기술도 은밀하게 익혀 정말 무수한 노력을 기반으로 본인이 꿈꾸던 구두를 실제 만들게 된다. 그러나 마을의 부유한 식료품상의 아내가 된 뒤로는 가게를 운영하기에 바빠, 더 이상 멋진 구두에 대한 발상을 할 수 없게 된다. 사다리가 놓일 조용한 내 머릿속 집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없어지자, 당연히 상상의 사다리도, 꿈의 다락방도 사라지게 되었다.


릴라는 돈을 얻은 대신, 꿈을 잃었다. 풍족은 물질이지, 정신이 아니다.


지금의 많은 학생들은 내신 성적의 석차를 얻는 대신, 상상력을 잃는다. 석차 숫자에 매몰되어 나의 머리에 ‘사고력’ 대신 ‘암기력’을 장착한다. 책을 읽으며 조용히 사색하는 시간 대신, 학원 숙제를 하기에 바쁘다. 그들이 진정한 에너지원을 갖기 위해서는 릴라가 레누한테 요청했던 대로, 먼저


그 어떠한 책이라도 일단 읽어야 한다. 레누가 모기 잡는 데 사용했던 희곡 책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