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법
“아모스, 도와줘!” 산더미처럼 큰 고래가 콩알만한 생쥐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곧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면 난 죽게 될 거야.” 아모스는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보리스를 위해 무슨 일인가를 빨리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모스는 어디론가 재빨리 달려갔습니다. ‘아모스가 정말로 나를 도와 줄 수 있을까? 아무리 돕고 싶어도 저렇게 작은 친구가 뭘 어떻게 해 줄 수 있을까?’ 보리스는 힘없이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 윌리엄 스타이그, ‘아모스와 보리스’
어느 반에 배정될지, 누구와 같은 반이 될지, 개학 한 달 전부터 불안해하며 걱정하는 딸을 보며, 아무리 대입이 당면과제라 해도 학창 시절의 ‘관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부모는 아이의 성적 향상에 관심이 많겠지만, 아이는 누구와 밥을 먹는지, 수학여행을 같이 가는지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관계 맺기에 대해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공부는 한 만큼 성적이 나올 것이라 낙관해도 되지만, 사람의 ‘인연’은 아무도 모르지 않은가.
나 역시 학창 시절 처절히 공부했던 고3 시절에도 친구 때문에 힘들었다. 지금은 인간관계가 중요하지 않다고 머릿속에 백번은 되뇌어도, 가슴이 쓰라린 건 어쩔 수 없었다. 고2 때 동아리 부장을 맡는 바람에 내신 등급이 많이 하락했고, 이것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얼마나 독하게 공부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동아리 후배들이 차려주는 수능 백일 행사에 전직 부장이 참여하지 않을 정도로 관계를 멀리했다. 그럼에도 어쩔수 없이 반에서 함께 밥 먹을 친구가 필요했다. 그때는 급식이 없어서 도시락 싸 오던 시절이었고, 거의 교시 중간에 밥을 급하게 먹어 치웠지만, 그래도 운동장 조회 때 나란히 설 친구도 필요했다.
교사가 된 지금, 그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실감한다. 놀이공원으로 체험학습을 가는데 성격도 밝고, 발표에 적극적이며, 성적도 우수하기로 유명한 어떤 학생이 안 간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말하길 그 학생이 사실 보이는 것과 달리 반에 친구가 딱 한 명이 있는데, 그 친구가 체험학습을 안 간다고 하여 이 학생도 결국 못 간다고 했다는 것이다.
보리스는 바닷가에 홀로 누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옛날 아모스가 바다 한가운데 빠져 홀로 있을 때 느꼈던 것과 똑같은 두려움 말입니다. 보리스는 자기가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모스가 커다란 코끼리 두 마리를 데리고 달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K고딩의 입시 이야기 중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해 논의하다가, 왜 이렇게 이 동화책에 대해 몰입하고 있는지 이제는 밝힐 때가 되었다. 사실 작년 이맘때 나는 근 이주에 걸쳐 밥 먹고, 최소한의 잠을 자는 시간 빼고는 글만 썼다. 정말 놀랍게도 이야기가 쉬지 않고 계속 달려 나갔다. 마치 말이 기수를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 숲을 헤쳐 나가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엔진의 상당 부분이 이 동화책에 있었다. 딸이 초등학생 1학년 때 필독서라 해서 구해서 같이 읽고 잊었지만, 우연히 딸의 독후감을 보면서 충격을 받아 다시 읽어 보았던 책, ‘아모스와 보리스’이다.
아모스가 바다에서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보리스가 도와줬듯이 보리스가 뭍에 밀려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아모스가 돕는다. 우리가 생각할 때, 고래가 일방적으로 생쥐를 도울 것 같지만, 삶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 돕는다. 흔히 잘못된 관계를 드러내는 ‘갑을’은 필요하지 않다. 책에서 알려주다시피 크기의 차이는 ‘죽음’에 직면할 때 다르게 작용하지 않는다. ‘똑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인간은 하늘 아래 만민이 같다. 만약 고래가 생쥐의 두려움을 바다에서 무시했으면 어떤 결말로 흘러갈까. 생쥐는 당연히 죽었을 것이고, 고래는 도와달라고 부르짖을 친구가 없어 역시 쓸쓸히 죽었을 것이다. 고래는 생쥐를 귀하게 여겨 친구로 삼아, 그의 집까지 무사히 데려다주었고,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생쥐의 크기에 상관없이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뭍에서 아는 유일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존재의 가치에 대해 인정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길 때, 서로 간에 친해질 수 있다.
보리스는 아모스에게 아프리카의 상아 해안에 데려다주겠다고 했습니다. 보리스는 전 세계 일곱 개의 대양에서 모이는 고래들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그곳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모스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모험은 이제 그만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모스는 보리스에게, 잠시 방향을 바꿔 집에 데려다 주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꾸나. 아주 신기한 모험이 될 것 같은데. 아마 너처럼 신기한 동물과 사귀어 본 고래는 없었을 거야! 자, 어서 내 등에 타.”
다르면 틀린 게 아니라, ‘신기한’ 것이다. 자신의 틀 안에 맞춰, 나는 고래고, 고래들의 모임에 참석해야 하니 네가 거기까지 가게 된 것도 감지덕지한 거지. 어디 생쥐 주제에 네 의견을 말하는 거냐고 말하면 할 말은 없다. 아모스는 보리스가 화를 냈다면 잠자코 그의 등에서 눈치를 보며 견뎠을 것이다. 일단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고 한들, 그를 친구로 생각했을까? 그와의 항해를 기억하고 싶을지도 의문이다.
인간관계의 시작은 우연이라 해도, 그들이 서로를 그리워하며 추억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노력 때문이다. 고래는 생쥐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내가 모임에 좀 돌아가더라도, 생쥐가 바다에 빠져 기운이 없는 상태이니 집에 빨리 가서 쉬고 싶겠지 하고 생쥐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다. 나보다 너의 편안함을, 너의 행복을 생각했다면 우리 관계에 대해 감히 낙관할 수 있다.
고래가 손해 보는 장사를 했다고? 인간관계가 어디 장사인가? 준 만큼 갚아야 한다면, 모든 호의가 부담스러워질 것이다. 그럼 생쥐는 감히 고래 등을 타고 집에 돌아올 수 없었다. 그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인간도 이 세상에 대해 계산하지 못한 채 태어났다. 그렇게 태어난 나인데, 어떻게 내 자녀에 대해 계산할 수 있단 말인가. 자녀는 빚이 아니라, 그저 빛이다. 그를 신기하고 존귀하게 여기며, 모험을 떠나야 한다. 당장의 성적과 대입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남을, 서로간의 관계에 대해 낙관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대한민국의 학생들이 오늘도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