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저 너머에서 거대하게 자라난 그림자가 되어 순간의 의식에 강렬한 빛이 갑자기 들어온 듯 하게 깔린다. 순간의 기억이 이리도 달콤했던가, 찰나의 소리가 이리도 아련했던가.네가 있어 내가 있었고, 기억의 삶이 앞으로의 방향을 끌어내듯 내 기억 속에 거대한 그림자인 너는, 빛의 방향을 바꾸어 나를 안내한다.네가 있어 빛이 있던것인가, 빛이 있어 네가 있던것인가. 너는 그 자리에 여전하다. 그 자리엔 빛이 비추지 않아도, 그림자인 너는 빛을 비추고 있다.
타자의 기억속에 내가 존재한다. 나의 기억속에 타자가 존재한다. 우리의 존재는 누군가의 기억에서 시작됨을 기억하나. 너의 존재는 오롯히 너로부터 시작된 것인가, 누군가의 기억에서 시작된 너인가. 우리는 종종 자신이 어떤 사람임을 누군가에게 대신 설명을 부탁할 때가 있다. 내가 쌓아온 나인데도, 누군가가 알아봐주어야만 내가 비로소 완벽하게 만들어진다.
그것의 어둠은, 곧 빛이 있을것의 징조이며 빛은 곧 어둠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큰 용기이며, 두려움에 맞서는 도전이다. 어둠이 빛을 만들어내는 것, 빛은 어둠이 없으면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
누군가가 그림자가 되기까지는, 그 누군가의 빛을 찾아내고 찾아내려 해봤지만, 그의 어둠을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빛을 찾아낼 수 없었다. 어둠을 인정하는 순간, 빛이 없어도 어둠이 존재해버리고 만다. 그렇게 그는 빛을 비추어 주지 않아도, 스스로의 어둠으로 빛을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