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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 Dec 04. 2020

좋은 팀을 만난다는 것

직장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행운

일 힘든 건 버텨도 사람 힘든 건 못 버틴다. 어디 가서 들이밀어도 공감을 사는 말이다. 경력이 꽉 찬 사람들도 사람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직을 망설이는 이유 중에 인맥을 다시 다져야 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았다. 사회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행운의 총량을 초년에 다 써버린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괜찮은 팀에 들어왔다.


입사부터 지금까지 한 팀에서 일하고 있다. 팀원들도 바뀌지 않았다. 능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팀을 자주 옮겨 다니게 된다지만 말단은 예외다. 한 가지 업무, 한 곳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사람을 이리저리 돌리는 건 의도와 상관없이 사람을 내쫓게 된다. 사람을 뱅뱅 돌리는 회사인데, IT 같은 특수 직무는 좀 예외라고 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정보보호팀으로 이동할 뿐 일정 바운더리 안에서만 돌게 된다고 했다. 저 말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됐는지 모른다. 어찌 됐든 이 회사에 다니는 동안은 우리 팀 사람들과 계속 볼 수 있고, 업무를 함께 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우리 팀에는 꼰대가 없다.


제일 말단인 내가 오히려 제일 꼰대 같다. 벌써 3년째 같은 팀에 있는데 인격 모독이나, 해서는 안 될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늘 잘못된 점이 있으면 지적해달라는 요청을 하고, 실제로 그 점을 얘기했을 때 즉시 사과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기억나는 일화가 너무 많다. 주간 업무 보고 시간에 팀장님께서 연차나 휴가는 알아서 자유롭게 쓰고, 이유를 물어보지도 말라고 하셨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차를 쓸 때 매니저님께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셔서 팀장님이 물어보지 말라고 하셨는데..? 하면 아 참 그렇지. 하시고 팀장님은 옆에서 물어보지 말라니까 왜 물어보냐고 짐짓 장난을 치신다. 어느 회사나 저 말을 내걸지만 실제로 실행하지는 않는다. 사정을 구구절절 얘기하고도 연차나 휴가 일정은 눈치를 봐야 한다. 우리 회사도 다르지 않지만, 우리 팀은 다르다. 담당 업무상 문제가 없고, 팀원들끼리 겹치지만 않는다면 정말 자유롭게 써도 된다. 가끔 이유를 물으면 그냥요, 하고 말할 수 있고 대답으로 그럴 수 있지, 가 돌아온다. 가볍게 물어보고 가볍게 대답할 수 있다. 팀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용인된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팀이라 좋다.




우리 팀에는 도움을 요청했을 때 외면하는 사람이 없다.


회사에서 말단이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역량도 부족하지만 권한도 전무하다. 하지만 최전방 실무자라 부딪힐 일도, 사람도 많다. 빨리 도움을 요청할수록 쉽게 해결되는 문제들이 있다. 그런데 말단은 눈치를 보느라, 혹은 이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건인지 정확히 파악을 하기조차 어렵다. 사실 모르면 물어보는 게 더 나은데도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는 건 분위기 탓이 크다. 얘기도 나누기 힘든 경직된 분위기, 팀원들이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질문을 할 수는 없다. 우리 팀에서는 누가 끙끙 앓고 있으면 먼저 물어봐주고, 해결 방안을 같이 찾아보고, 알려주고, 필요에 따라 일을 가져가기도 한다. 그 존재가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진짜 '동료'라는 느낌. 종종 짜증을 내고 있으면 누가 그랬냐며 물어오고, 나한테 넘기라고 하는 사람들. 막히면 부담 없이 팀장님이며 매니저님을 찾고 도와달라고 할 수 있는 분위기. 방치와 압박이 가득한 회사 속에서 숨구멍 같은 곳이 우리 팀이라 좋다.




우리 팀은 개인의 역량 개발을 응원한다.


업무를 하다 보면 자기 업무에 치여서 남들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 그래도 우리 팀은 교육이 있을 때마다 최대한 보내주려고 하는 편이다. 먼저 이런 교육이 있는데 가 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오고, 필요하면 인재개발팀에 말해줄 테니 유상 교육 듣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한다. 담당업무가 프로젝트라 비수기에는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로 일이 없어서, 종종 그룹 온라인 강의를 이용해 파이썬이나 자바 강의를 들었었다. 관련 직무니까 이해해주시지 않을까 생각은 했지만 업무시간 중이니까 혼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들 궁금해하며 관심 가져주시고, 공부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도와주기도 하셨다. 오히려 들어보고 괜찮으면 다른 직원들한테도 말해주게 후기를 알려달라고 하셨다. 직책자 중에는 전공자가 더 많아서 공간복잡도 O(n) 같은 건 엄청 여쭤봤었는데 많이 배웠다. 근데 아직도 이해 못함 실제로 나는 동기 중에서도 꽤 많은 교육을 들은 편이다. 업무 시간 중에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회사 차원에서 진행하는 교육조차 눈치를 주며 빠지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언제나 기회를 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 팀이라 좋다.






누구에게나 처음이 중요하다. 신입사원의 퇴사율이 입사 직후 1년에 편중되어 있는 까닭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드디어 학생에서 벗어나서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떼는 첫 발걸음.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니고서야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알아서 잘하기는 쉽지 않다. 배움 없이 스스로 깨닫고 제 몫을 하길 바라는 건 도둑에 가깝다. 그런데도 회사는, 상사들은 교육에 투자하지 않는다. 비용이 아까워서, 시간이 없어서. 그 과정에서 동기들이 무작정 방치되거나 적응할 시간도 없이 실무에 투입되는 꼴을 봐왔다. 당연히 좋은 결과가 있을 리 없다. 회사를 떠나거나 타성에 젖었다. 우리 회사의 분위기도 한몫했겠지만 의지할 수 있는 동료가 없어서 다들 바뀌어가는 것 같았다. 입사할 때부터 그러려고 마음을 먹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회사가 딱히 맘에 들지는 않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한 일들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의 내 일과, 동료들이 너무 좋다. 어딜 가도 이만한 사람들을 얻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성장하고 여러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낸 건 팀원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함께 지낸 시간이 오래되었기도 했고, 어느 관계나 마냥 좋을 수는 없다. 때로는 불만이 생길 수도 있지만 이렇게 좋은 점을 남겨두고 되새기면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연말에 팀에 대한 사랑이 뿜뿜하기도 해서 새삼 감사하는 마음으로 써 본 글. 인사 시즌이라 또 불안불안한데 이번에도 변동 없이 우리 팀 유지되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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