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백건우 선생님 피아노 리사이틀(통영)을 다녀와서

by michaela

“언니, 백건우 선생님 좋아한다고 했죠? 통영에서 공연 있는데, 보러 갈래요?”

내가 백건우 선생님의 ‘섬마을 콘서트’ 영상을 보고 좋아서 했던 말을, J는 흘려듣지 않았다.

백건우 선생님에 대해서도, 피아노에 대해서도 아는 건 별로 없다.

다만, 70살이 넘어서도 쇼팽의 녹턴 전집 앨범을 발매해 주시는 분이 좋았다. ‘건반 위의 구도자’라는 별명의 무게감을 견디며 그에 맞는 선물을 사람들에게 주시는 분이 존경스러웠다.

그래서 통영도, 백건우 선생님도 좋은 나는 무조건 “좋아! 좋아!”라고 대답했다. 프로그램도 묻지 않고.


그런데 슈만이라니...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슈만의 음악은 아무것도 없었다. 앨범을 사서 들어봐도, 자기 스스로 짐을 싸서 정신병원에 들어간 음악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통영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충렬사 단풍, 이순신공원에서 본 바다, 음악당에서 본 바다
'통영 오월' 레스토랑, 적산가옥을 개조한 카페, 수제 맥주집

맑은 가을 하늘 아래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충렬사의 단풍과 파아란 하늘 아래 펼쳐진 바다가 아름다웠다. 통영에 들르면 찾는 ‘통영 오월’ 레스토랑 셰프님께서 제철에 맞게 차려주신 음식은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게 맛있었다. 적산가옥을 개조한 커피숍에서는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았고, 밤바다를 구경하고 마신 수제 맥주는 자꾸 얼굴에 미륵 부처님의 미소를 만들어냈다.


아무리 통영이 아름다워도...

역시나 슈만은 어려웠다. 누군가는 연주 내내 고개를 숙여 기도했고, 어려운 음악에 집중력이 떨어진 몇몇 사람들은 종종 팸플릿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연주 중에 왠지 모르게 감정을 복받치게 만드는 뭔가가 솟구쳐 올라 문득문득 눈물을 흘렸다. 나이 든 연주자의 에너지와 감정이 전해지던 마지막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해하기 어려웠던 음악을 조금은 더 이해해 보려 집에 돌아와 책을 읽었더니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었다.


이처럼 슈만의 음악은 소멸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는 거의 저승이라고 할 수 있는 다른 세계에 속한, 그곳으로 되돌아가는 아주 먼 곳의 목소리다. 이 점에서 슈만의 어머니가 옳았다. ‘나비’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쓰고 있다.

“바이제너가 나를 위해 네가 옛날에 치던 피아노로 ‘나비’를 연주해주었다. 그 곡을 듣고 내가 받은 인상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도대체 단 하나의 음조차 이해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이런! 물론 이 작품 속에는 눈물이 솟구치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긴 하다. 하지만 특히 마지막 부분 때문에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우울해지고 말았단다. 멀어지는, 소멸해가는 그 소리들은 노년의 모습이야. 해마다 하나씩 소리가 수명을 다해 사라지고, 이윽고 더 이상 우리의 소리를 들려줄 수 없는 날이 오는 거야. 자기 뒤에 긴 울림을 남기는 사람, 자신의 힘을 우수한 이들에게 물려주는 사람은 행복하겠지. 내 마지막 시간이 이 먼 속삭임 같은 것이 되기를…….”

-「슈만, 내면의 풍경」, 미셸 슈나이더 지음


전에는

“내가 직관이 발달해서 사람을 잘 보잖아. 나는 사람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 바로 각이 나와.”

건방진 소리를 했던 적이 있다.

연주회를 다녀오고, 책을 읽으며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그게 가능하기는 한지...

생각했다.

우리 모두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오는 고독을 감내하는 것.

이게 다른 고유의 존재를 존중하는 방식은 아닐까?



내가 백건우 선생님을, J를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그날 함께해서 나는 덜 외로웠고 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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