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의 고향 통영을 나도 그리워하게 되었다.

by michaela

“언니, 베를린에 간 동백나무는 이제 걱정 안 해도 되겠어요.”

통영에서 자란 후배가 말했다.

영부인께서 베를린에 있는 윤이상 선생 묘소를 참배할 때, 통영의 동백나무 한 그루를 가져다 심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전에 고향을 그리워하셨다는 윤이상 선생님 묘소에 통영 동백나무를 심는다는 생각이야 나쁘지 않은데요... 기후가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동백나무가 베를린의 겨울 추위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하던 후배는

두 달 만에 만나

“언니, 베를린에 있는 윤이상 선생님 유해를 통영으로 모셔온대요. 지난번에 베를린에 가져다 심은 동백나무도 함께 온다고 하니, 이제는 그 동백나무 얼어 죽을까봐 걱정 안 해도 되겠어요.”

라며 자신의 고향 소식을 전했다.

“J야, 네 말 듣고 윤이상 선생님에 대해서 검색해 봤어. 정말 업적이 대단하시더라. 그런데 언니는 그 업적을 따라 나오는 독일 지명에 눈이 더 갔어. 베를린, 뮌헨이야 그렇다 쳐도 ‘튀빙겐’이랑 ‘다름슈타트’를 보는 순간, 한 번밖에 안 다녀온 그곳이 왜 그렇게 그립던지... 선생님 묘소를 이곳으로 옮겨오면, 혹시 또 독일이 많이 그리우신 건 아닐까?”


“동베를린 사건 겪고 독일국적 취득해 살면서도 침대 머리맡에 통영의 정경 사진을 두었다는 얘기나 배를 타고 통영을 멀찍이서 바라보다 가셨다는 얘기 들으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고향 땅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도 하셨대요.”

“그렇구나... 혹시 너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게 이해가 되니?”

“아직 절절하게 느껴본 적은 없는데요, 확실히 20대 때랑 다르긴 해요. 20살, 서울에 막 올라와서 학교 다닐 때는 문화시설 잘 되어 있고, 볼거리 많고, 편리한 서울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그때는 무조건 평생 서울에서 살겠다, 서울에 뼈를 묻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서른 살이 넘으니 고향이 있어서 참 좋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내려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어요. 나이가 더 많이 들면, ‘향수’를 더욱 깊게 느낄지도 모르죠.”

“언니는 고향이 있는 네가 부럽다. 40년 가까이 한 동네에 살았지만 태어난 도시가 아니라서 그런가, 부모님 고향이 아니라서 그런가, 지금 사는 곳을 고향이라 생각했던 적이 없어. 몇 년을 떠나 살아도 아파트가 너무 그리워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아. 오히려 여행 다니면서 만났던 아름다운 곳들이 문득 뼈에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날이 있지. 때때로 평화로운 장소에서 휴식을 취할 때면, 이곳에서 평온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겠다는 생각도 했었어. 그래서 말인데... 혹시 이 언니가 여행 중에 객사했다는 소식 듣거든, 시신을 굳이 우리나라로 들여오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고 전해다오.”


나의 얘기를 듣고

“예. 자세한 장례 절차가 어떤지는 모지만, 기억하고 있다가 언니 의견은 전할게요. 혹시 마음 바뀌면 얘기해 주세요.”

라며 한 마디 타박도 없이 담백하게 받아주던 후배에게서 한 달 전에 전화가 왔다.


“언니, 3월 말에서 4월 초에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리는데 시간 괜찮아요?”

“3월 31일은 어떨까?”

“좋아요. 이번 통영국제음악제 주제가 ‘귀향’이에요. 지난번에 언니랑 윤이상 선생님 얘기했었잖아요? 마침 31일에 뮤직시어터 공연이 있는데, 이번 윤이상 선생님 귀향을 모티프로 창작된 작품이니까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3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 아침에 통영행 버스에 올랐다.


차창 너머, 섬진강과 지리산 자락에 피어나는 벚꽃이 아름다웠다. 도착하자마자 후배의 어머님께서 차려주신 정갈한 집밥을 먹고는 그저 후배가 이끄는 대로 따라다녔다.


남도의 빛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전혁림 미술관, 소품 하나하나와 장소 구석구석에서 세심한 정성과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던 봄날의 책방, 오페라와 한국 전통가곡을 교차하며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룬 음악극 ‘귀향’,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마신 커피 한잔, 윤이상 기념관에서 우연히 듣게 된 쇼팽의 피아노 선율까지... 이 모든 것들이 갑작스럽게 받은 선물꾸러미 같아 마냥 감사했다.


전혁림 미술관(좌), 봄날의 책방(우)
통영 국제음악당
충무교에서 바라본 통영대교


통영의 명물인 꿀빵과 새벽에 일어나 따온 굴을 건네려고 버스터미널까지 배웅 나오신 후배의 어머님께 인사드리며 생각했다.


J는 이미 윤이상 선생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었겠구나...


“여러분, 나는 윤이상입니다. 나는 통영에서 자랐고, 통영에서 그 귀중한 정신적, 정서적인 모든 요소를 내 몸에 지니고 그것을 나의 정신과 예술적 기량에 표현해 나의 평생 작품을 써왔습니다. 내가 구라파에 체제하던 38년 동안 나는 한 번도 통영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잔잔한 바다, 그 푸른 물 색, 그 잔잔한 초목을 스쳐가는 바람도 나한테는 음악으로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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