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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Jul 10. 2017

당신의 여행을 평가할 자격이 내겐 없음을...

“쯧쯧. 저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얼굴 붉히며 몰래카메라나 찍고 있다니...”

‘뭉쳐야 뜬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뱉은 말이었다.  



‘뭉쳐야 뜬다’는 멤버들이 패키지여행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인데, 내가 본 건 스위스 편이었다. 천정일부까지 유리로 만든 파노라마 열차 안에서 멤버들은 몰래카메라를 찍었다. 누군가는 여권이 든 가방을 숨기고, 누군가는 화가 난 척 얼굴을 붉히며 큰소리쳤다. 창밖의 아름다운 경치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서로를 당황스럽고 불편하게 만드는 멤버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를 속이고 불편하게 만드느라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운 그림. 이게 내 머릿속 스위스 풍경이니까.



생애 처음으로 만년설을 마주했던 날, 많은 것들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안개 속 융프라우,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신라면 국물보다 더욱 뜨겁게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한 발짝 옮기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서는 풍경을 사각의 프레임에 담아 보겠다며 안간힘 쓰느라 마지막 기차를 놓칠까봐 노심초사 했었다.


프로그램은 보는 둥 마는 둥 내가 봤던 스위스의 아름다운 자연을 떠올리는데, 멤버들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누는 장면이 나왔다. 그 순간, 아름다운 자연으로 가득했던 내 머릿속에도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다. 체르마트에 함께 갔던 동생, 숙소에서 김치찌개를 건넸던 모녀, 낯모를 여행객에게 자신의 집을 선뜻 내어준 J, 퇴근길 기차에서 만난 여행객에게 치즈 퐁듀를 사줬던 G까지.

     

그러면서 ‘아! 저 사람들은 나중에 스위스를 추억할 때, 아름다운 자연, 그 아름다운 자연을 흘깃거리며 몰래카메라에 가슴 콩닥거리던 순간, 같이했던 멤버들을 함께 떠올리겠구나. 그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저들의 여행인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횟수가 늘면서 자연스레 무용담도 늘어갔다. 이름 모를 기차역에서 풍찬 노숙을 하며 국경을 넘던 겨울밤 이야기에, 야간 버스를 기다리다 갑자기 받은 불심검문 과정에서 등장한 마약견 이야기가 더해졌다. 숙소를 구하지 못했던 밤, 나에게 집을 통째로 내어주고 자신은 친구 집에서 잤던 J의 이야기는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다.     


무용담이 더해지면서, 나의 옹졸한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의 여행을 비교하고 평가하기 시작했다.

큰 도시만 찍고 온 유럽여행은 수박 겉핥기지, 어떤 도시에서는 며칠 이상 묵어야 할 이야기가 있지, 무슨 미술관은 온종일 봐야 그 진가를 느낄 수 있지 하며 으스대다가도 낯선 여행지를 개척하거나 나보다 짜릿한 여행담을 풀어놓는 여행기 앞에서는 괜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는 사실을 여행을 통해 깨달은 내가, 얼마나 편협한 시각으로 여행을 대하고 있었는지 TV를 보며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방방곡곡과 세계 곳곳을 누비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등산복 입고 깃발을 따라 다니는 패키지여행, 주요 관광지에서 인증샷만 찍는 여행,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목적인 여행, 다양한 모습의 여행을 응원합니다.

당신의 느낌과 경험이 나의 것만큼 소중하다는 사실, 그걸 저는 여행을 통해 배웠으니까요.     


참, 아무리 그래도 박물관에서 셀카봉 휘두르는 여행, 세계 문화 유산에 낙서하는 여행, 사진 한 장 찍겠다고 다른 사람 얼굴에 과하게 엉덩짝 들이미는 여행, 손님은 왕이라며 빨리빨리 외치다가 무시당하는 여행은 응원 안 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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