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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Mar 29. 2021

보고 싶구나.. 그래. 그러다가, 밥할 때 되면 밥하고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1년 전 이맘때, 친구 어머니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아프신 곳이 있었던 것도, 특별한 징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두어 시간 전만 해도 친구와 전화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셨던 어머니는 봄쑥을 다듬으시다가 심장마비 같은 병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죽음을 전하는 친구의 메시지를 받고, 꿈인지 현실인이 구분이 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가면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눈물을 흘리며 생각했었다.


그러나 의젓하게 장례 절차를 치르는 친구를 보며 깨달았다. 

굳이 내가 해야 할 일이나 말 따위는 없음을.


친구는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게 된 경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음을 쓰고 도움을 주는 지인들이 많아서 고맙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제 막 환갑을 넘기신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차고 넘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친구는 몇 해 전 어머니와 함께 했던 유럽여행 이야기를 했다. 재작년에 가족사진을 찍어둬서 참 다행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장례식 이후로도 가끔 친구를 만나 어머님 이야기를 나눴지만, 눈물을 흘린 적은 없다. 

그러나 엄마가 해 주시는 잡채 생각이 난나고, 생일 때 엄마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 너무 보고 싶어서 눈물을 많이 흘릴 때가 가끔 있다고 덤덤히 말하는 친구의 그리움이 얼마나 깊은 지는...

엄마와 함께 알프스 산자락을 걷는 뒷모습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 1년 동안 바뀌지 않는 걸 보며 짐작해 본다.


정답은 없지만, 친구를 통해 소중한 사람과 이별하는 법을 조금은 배운 것 같다.

예전에 봤던 노희경 작가의 '꽃보다 아름다워'를 이제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재 수 : (조심스레 말 거는) 엄마는...재식이형.. 안보고 싶냐?     
엄 마 : (창가만 보며) ...     
재 수 : 말해봐, 안보고 싶어?     
엄 마 : (창가만 보며, 덤덤하게) 보고싶을 때도 있고, 잊어먹을 때도 있고, 그렇지, 뭐.     
재 수 : 엄마, 형 보고싶을 땐 어떻게 해?     
엄 마 : (창가만 보며, 덤덤하게) 보고 싶구나..보고싶구나..    
          내가 재식이가 보고 싶구나..그래.그러다가, 밥할 때 되면 밥하고,     
          설거지 할때 되면,설거지하고 빨래할 때 되면 빨래하고 그래..     
          그러다 보니까 세월이 훌쩍 갔네.... (하다가, 재수 보며) 왜.. 형보고 싶어?     
재 수 : (엄마 안보고, 짐짓 담담하게) 어.     
엄 마 : 그럼 엄마처럼 해봐. (천천히 따뜻하게) 아, 보고 싶구나..내가 형이 보고 싶구나...그렇게.     
재 수 : 아, 보고 싶구나..내가 형이 보고 싶구나..그렇게?     
엄 마 : (재수 안쓰럽고 따뜻하게 보고 웃음 띤) 그래, 그렇게..아, 보고 싶구나...            
          내가 보고 싶구나...내가 형이..많이 보고 싶구나..     
재 수 : (엄마보고, 작게 웃으려 애쓰며, 천천히, 어둡지 않게 따라하는)      
          보고싶구나...보고..싶구나..내가 형이 많이 보고 싶구나..   
                                                                                    - 노희경, '꽃보다 아름다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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