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chaela Oct 17. 2021

B야, 넌 아직 날 이해 못했어.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면접 동영상 찍어봤어요. 어때요?


플레이 버튼을 누르니 '소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소통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왔다.


"소통은 배려를 바탕으로 제 생각을 쉽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통이 중요한 이유는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영상을 본 후, 반사적으로 피드백 메시지를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으이궁... 깊이 있게 생각 안 하셨구만?
소통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그 이유가 똑같잖아? 동어반복!!!
'소통은 배려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제 생각을 쉽게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라고 하는 건 어때?
경청과 공감이 소통에서 얼마나 중요한데.. 너의 의견만 쉽게 전한다고 소통을 잘하는 건 아니잖아?


정답스런 말을 쏟아내는데, 얼마 전 친구들과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S와 B를 오랜만에 만났다. S와는 평소에 자주 연락을 하지 않지만, B와는 종종 전화를 해서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떤다. B와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는 다양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B는 또 내가 정서적으로 가장 불안정했던 시기, 책 읽을 힘조차 없던 시기에 계속 말을 건네준 친구다. 그 시기 B는 나에게 책이고 도끼였다. 덕분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찾았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기준을 따라 한 발씩 내딛다 보니 삶이 한결 자연스럽고 평안해졌다.


그런데, B는 지금도 그때의 시선으로 나를 대하곤 한다. 그럴 때면 우리 사이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기 힘든 거리가 생긴다. 결국은 이성적인 B와 결국은 감성적인 나의 다름이 서로에게 서운함을 쌓았던 것 같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사유하는 B는 하나의 키워드를 놓고도 열 가지를 동시에 떠올리는 내가 이해하기 힘들다. 정치와 철학에 대해서 2시간이나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도(이건 나에겐 지적 유희다.) 논리적 비약을 거쳐 하느님의 자녀로서 생뚱맞은 결론을 툭 내뱉으며 이야기를 마무리지으려는 내가(이건 실컷 놀아 피곤하니 이야기를 마무리하려는 태도다.) 자신을 놀리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정신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평소 B와 둘이서만 얘기할 때는 이런 것들을 그냥 덮어뒀었다. 그런데,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S의 입에서


“B, 너는 공감 능력이 떨어져.”


하는 말이 쿨하게 튀어나왔을 때, 그동안 내가 하지 못했던 말을 S가 대신해 준 것 같아 시원했다. 평소의 나 같으면 오만 가지 생각을 하느라, 더구나 상대방을 나쁘게 평가하는 것 같아서 하지 못했을 말을 S는 어렵지 않게 했다. 그러자 B는


“너희가 말하는 공감이 뭔데? 공감은…”

하면서 용어를 규정하고 심리학책이나 철학책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를 꺼냈다.


S는 또 쉽게

“그런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 그냥 논리적으로 맞아떨어지지 않아도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

하고 말했다.


내가

“S야, 평소에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이 이거야.”

거드는데


“너희들이 하는 얘기가 뭔지 모르겠어.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나를 이해시켜봐.”

하고 B가 얘기했다.


“어떻게 모든 걸 말로 설명하고 예를 들 수 있니? 그냥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있는 거잖아. 아까 은정이가 얘기한 것도 그런 거고… B야, 은정이는 네가 보기엔 모순되는 생각들이 동시에 떠오르는 거야.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거야.”

하는 S의 대답을 듣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이거 봐. 얘는 감정이 풍부한 사람인 거야. 그런데 너는 상대방이 감정에 호소할 때 더 이성적으로 대응하니까 어느 순간 상대방은 뭔가 다그침을 받는 느낌이 드는 거지. 너희 둘 정말 웃겨.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는데, 그래서 오히려 서로가 이해 안 되는 순간이 생기는 거지.”


“S는 나를 이해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B야, 넌 아직 날 이해 못했어.”

하고 말하는 내게 B가 몸을 기울였다. 순수한 호기심의 눈빛을 담아서.

 

그제야 나는 B의 답답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B는 나를 다그치기 위해서, 나를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위해서 내게 곤란한 질문을 쏟아냈던 게 아니었음을. 나를 불편하게 만들던 많은 순간들은, 오히려 B가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어서 한 발짝 내쪽으로 더 다가서던 시간이었음을…


앞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더 많이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일부러 둘만의 대화를 피할 수도 있고, 서로 이해가 안 되기 시작하면 이제 우리 그만 얘기할 때가 되었다고 선을 그을 수도 있다.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근질근질해서 누군가 먼저 수화기를 들 테고, 때로는 섭섭해할 테고, 가끔은 또 솔로몬 같은 S와 함께 만나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가질 테다.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고 애쓰는 것.

결국, 이런 게 소통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저기 죽은 사람들 중에 우리가 만난 사람도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