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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Apr 09. 2016

요한아~~  
벚꽃이 어제보다 활짝 피었다^^

아침 출근길, 어제보다 활짝 핀 벚꽃을 보니 요한이가 생각났다.


재작년 4월 아침.

"와~~ 벚꽃이 어제보다 활짝 피었네."

하고 감탄하는 요한이의 말을 듣기 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벚꽃이 피었는 줄도...


'10분만...'하다가 씻지도 않은 채로 잠이 든 다음날 아침이었고, 젖은 머리를 말릴 겨를도 없이 퉁퉁 부은 눈으로 뛰쳐나온 아침이었고, 지각을 할 것 같아서 택시를 타러 달려가는 길에 요한이를 만난 아침이었다.


요한이는 내가 수업을 들어가는 음악과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하는 아이였다. 우리집과 요한이네 집은 같은 방향에 있었는데, 학교에 가려면 송내역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이날 아침에 나는 송내역에서 버스를 타려고 서 있는 요한이를 우연히 만났

"버스 타면 늦겠어. 쌤이랑 같이 택시 타고 가자!!"

해서 같이 등교를 하게 되었다.


교문을 들어설 때도 내 머릿속은 제출해야 할 서류, 전날 끝내지 못한 업무, 방과후 수업준비 등등 '처리'해야 할 일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천진난만하게

"와~~ 벚꽃이 어제보다 활짝 피었네."

하는 요한이의 말을 듣는 순간, 저절로 발걸음이 멈춰졌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길~게 숨을 들이쉬고,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교정에 핀 벚꽃을 보고, 아이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리고는

'아~~ 이 아이는 어제도 저 꽃을 봤었구나...

 내가 이렇게 미세한 자연의 변화까지 마음에 담을 줄 아는 아이들과 생활하고 있구나... 꽃을 보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할 줄 아는 아이들과 생활하고 있구나..."

하며 감사했다.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던 동안, 아이들이  많은 이야기들을 어제의 벚꽃처럼 흘려보냈겠구나...'

싶어 반성했다.


요한이는 이후에도 문득문득 선지자처럼 나에게 깨달음을 전해 주곤 했다.




학기 초, 나는 국어 수업이 있을 때마다 한 명씩 자기 소개를 하도록 했다.

처음 만난 아이들에게 학급 친구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모든 아이들이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차렷! 선생님께 인사!' 대신에 아이들의 이야기로 수업을 시작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흥미와 집중을 유발한다. 등등 교육적 이유를 많이도 가져다 붙이긴 했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계산적인 의도가 있었다.

국어는 입시 국면에서 비중이 큰 과목이었고 그만큼 대부분의 아이들이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점 차이로 등급이 나뉘는 치열한 경쟁 상황을 나도 아이들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처음 자기 소개를 시작할 때만 해도 과정 평가라는 항목 아래 2점을 두고, 제한된 시간을 너무 초과 했으니 감점. 일관성과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으니까 감점. 말하기 태도에 문제가 있으니까 감점. 이런 식으로 더 잘한 아이들과 더 못한 아이들을 구별짓는 도구로 활용하려던 생각이 내게는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명, 또 한 명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너무 비교육적인 태도로 아이들을 대하려 했다는 사실에 속으로 민망함을 느꼈다.

때로는 말하려는 핵심이 잘 드러나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더러는 수업 시작을 늦추려 짐짓 시간을 끄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 소개를 잘 했다.


나는 아직도 요한이가 자기 소개 시간에 했던 이야기를 기억한다. 자신이 인상 깊게 경험한 일을 우리에 말해 준다며 요한이는 이야기했다.

"나는 몇 년 전에  중미에 있는 가난한 나라에 봉사 활동을 다녀온 적이 있어. 그곳에서 이런 저런 활동을 하고 아이들이랑 놀아 주기도 했는데, 유독 친해진 아이가 있어서 내 옷을 선물로 주고 왔어. 그리고 나서 또 몇 년이 지나 다시 그곳에 가게 되었는데, 그 아이가 내가 선물로 준 옷을 고대로 입고 있는 거야. 반가운 마음도 들고, 가난해서 옷을 사 입지 못하는 아이가 불쌍한 생각도 들고, 나는 그 아이에 비해서 충분히 풍족하게 살면서도 평상시에는 얼마나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반성도 했었어..."


듣는 사람에게 자신의 진심을 충분히 전달하는 요한이의 자기 소개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말하기에서는 비언어적 표현도 중요해. 좀 더 바른 자세로 서서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보조 자료를 적절하게 활용했다면 더 좋은 말하기가 되었겠구나."

하는 나의 평가 보다

"요한아, 네가 해준 이야기 정말 감동적이고 흥미롭다. 네가 만났다는 아이를 우리도 보고 싶은데, 사진을 보여 줬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 다음에 기회가 되면 보여줘."

하고 말하는 아이들의 반응이 훨씬 더 교육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솔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래서 감점, 저래서 감점."하는 나의 평가보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이래서 좋았는데, 저래서 아쉬웠어."하고 말하는 친구들의 반응이 더욱 교육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오히려 아이들에게 한 수 배운 수업이었다.

결국, 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2점을 주면서 자기 소개 수업을 끝냈고, 특별히 성실하게 말하기 준비를 했던 아이들에 대해서는 기록을 해 둠으로써 그 노력이 태도 점수 등에 반영될 수 있도록 마무리했다.




2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쯤 지난 아침, 나는 요한이를 송내역에서 다시 만났다. 우리는 또 같이 택시를 탔다.

내가 신나서 요한이에게 이야기했다.

"이번에 너희 관악 발표회 정말 좋았어. 쌤은 음악은 잘 모르지만... 신세계 교향곡을 관악기로만 편성해서 연주하니까 색다르더라. 개인적으로 클라리넷 좋아하는데, 클라리넷이 중심이 돼서 현악기처럼 멜로디 끌어 가니까 엄청 신선하던데?"

하는데 순간 아이 눈빛이 반짝반짝한다.

"쌤 저희 관악 발표회 보셨어요?"

"당연하지!!! 쌤 사실 많이 바빠서 마음만큼 너희 공연 못 챙겨보는데... 너희들 공연하는 모습 정말 대견하고 멋져~~~"


2014년 음악과 정기발표회


하는데 요한이가 뜬금없이 풀죽은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죄송해요."

"뭐가?"

"수업 시간에 자서요.. 마음 같아서는 정말 열심히 듣고 싶은데, 애써서 공부한 지가 꽤 돼서 따라가기가 쉽지 않아요.. "

"으이궁~~ 그게 어디 쌤한테 미안할 일인가? 난 네가 공부도 잘 했으면 좋겠지만, 일단은 그런 맘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나는 악기 잘 하니까 수업 시간에 좀 퍼 자도 된다고 싸가지 없게 생각하지 않아서 멋져^^ 이렇게 맘을 쓰는 사람이라서 그런가? 쌤처럼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도 네 클라리넷 소리 정말 좋아!!! 공부 못한다고 타박하기에는 무지하게 잘 불어!!!"

"애~~ 제가 뭘 잘해요... 정말 훌륭한 연주자들 많아요. 연습을 더 많이 해야돼요... 연습 하다보면 맥이 끊길까봐 일부러 화장실도 안 갈때가 있어요. 사실, 밤새 연습하고 다음 날 수업 시간에 깨어 있는 게 쉽지 않아요.."


쿵. 또 한번의 울림.

나는 아이가 음악을 좋아해서 잘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재능을 타고 난 아이라서 잘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두 마디의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두 달째 연습을 하고 있다는 아이에게서 예술이라는 것이 결코 우아한 토양에서 한가롭게 피어나는 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러면서도 곧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두 마디를 연주할 수 있을 거라며 웃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어린 나이에도 진심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진지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아이를 보고 내 가슴을 그토록 떨리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었다.




요한이를 만난 이후 나는 매 주마다 향상음악회를 보러 갔다. 향상음악회는 일종의 공개 수행평가 시간이었는데, 아이들은 자신의 순서가 되면 5분 이내의 시간동안 독주나 독창을 했다.

1학기 초, 수학을 담당하시던 부장님께서

"쌤~~ 음악과 들어가죠? 혹시 아이들 향상 시간에 수업 없으면 가서 봐요^^ 아이들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될거예요."

라고 말씀해 주셨던 게 무슨 의미인지를 나는 2학기가 돼서야 알게 되었다.


향상음악회를 보며 아이들의 긴장을 고스란히 공유하게 된 나는 그제서야 비로소 아이들과 한 공간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 오늘 저 하는 거 보셨어요?"하고 물어오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평소에는 수업을 열심히 듣던 아이가 왜 유독 특정 기간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지, 공부에는 당최 관심이 없는 것 같은 녀석들이 바이올린으로, 비올라로, 피아노로, 또 자신의 온 몸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내는 지를 알게 되면서 나의 수업에도 전체적으로 리듬이 생겼다.

향상이 있는 날에 내가 수업을 좀 더 유연하게 진행하면, 다음 수업 시간에 아이들은 재미 없는 중세 국어와도 끙끙 거리며 열심히 씨름을 해 줬다.


1학기 때는 교무실에서 고개를 쳐박고, 빨간펜을 들고, 꼼꼼하고 공정하게 수행평가를 첨삭한 후, 자신들이 왜 해당 점수를 받게 되었는 지 명확하게 설명을 해 주니까 나는 좋은 교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학기가 되어

역시 '사람이 먼저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 나는

내가 빨간펜으로 정성스럽게 첨삭한 자신의 수행평가 자료를 보고 고마워하던 아이들을, 또 나를

스스로 기만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순수하게 교육적인 목적으로만 빨간펜을 들지는 않았다.

"이것봐~~. 나는 이렇게 열심히 채점을 했단다. 그러니 점수에 문제를 제기하지는 말렴." 하는 방어적인 목적이 컸다.


나는 그래도 꽤 좋은 교사라는 건방진 생각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었던 2014년 가을, 멋지고 열정적인 아이들과 좋은 동료들을 만나서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게 뭔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 진지하게 고민했던 이 해 가을에 나는 2015년 5월에 리스본으로 출발하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지금도 요한이는 이미 나에게 훌륭한 음악가다. 그러나 나는 요한이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는 음악가가 돼서 내가 받은 감동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음표 하나 하나와 씨름을 하고 있을 요한아~~~ 너의 연주회 티켓이 금새 마감될까봐 마음 졸이며 예매하고, 디데이를 손꼽아 기다리고, 마음껏 감동할 그날을 기다리며 쌤이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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